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다시 보게 될 서대문

bindol 2022. 11. 16. 16:29

[이규태 코너] 다시 보게 될 서대문

조선일보
입력 2002.12.13 20:25
 
 
 
 


이명박 서울시장은 기초 학술 조사 후 2005년에 한양 4대 문 가운데
하나인 서대문을 복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돈의문(敦義門)인 이 서대문은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 정서(正西)의 정문으로 정동(正東)인 동대문과
일직선상인 지금 경희궁 정문 안 북쪽에 동대문처럼 옹성으로 둘려
있었다. 한데 세종 4년 경희궁 정문 앞 교차로에 옮겨 지었는데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성문을 옮겨 지어야 했는가에 대해 「용재총화(
齋叢話)」와 「해동야언(海東野言)」에 그 내력이 나온다.

태종 쿠데타의 공신으로 세도가인 한 정승의 집이 그 서대문 안쪽
가까이에 있었다. 한데 서대문을 통해 드나드는 고양의 나무꾼들 수레
소리에 소음이 대단했던지 그의 권세로 위에 알리어 성문을 틀어 막고
서소문으로 드나들게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세종이 무슨 일로 이
세도가가 성문을 두고 월권했을 때 권력이 무서워 아무 말 못했던
신하들을 비아냥대는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성문을 옮긴 데 이
세도가가 변수로 작용했음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성문을 막았다 하여 새문(塞門)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옮겨 새로
지었다 하여 새문(新門)이라 불려 지명에 혼동이 생긴 것이다. 그리하여
신문로(新門路)라는 지명이 돼내렸지만 문헌에 보면 서대문이 있는
마을이 새문동(塞門洞)으로 나온다. 이 세도가의 호화 주택은 그후
광해군의 아우요, 후에 왕위에 오르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元宗)이
살아 새문동궁(塞門洞宮)이라 불렸음으로 미루어 신문이 아니라
새문(塞門)이 맞는 것 같다.

모화관(慕華館) 통해 드는 중국 사신 일행의 입문 사대의례가 서대문
문전에서 베풀어졌기에 그 거드름피는 사신 앞에 머리 조아리는 임금의
모습을 지켜 보았을 것이요, 흥선대원군의 가마를 앞세우고 명성황후를
시해하려 드는 일본 낭인들의 도끼질로 대문의 빗장이 부러졌던 기억을
할 것이다. 그리고 갑오개혁으로 새 법령을 남발, 백성이 그 시행을 두고
믿지 않자 서대문전에 통나무를 쌓아 놓고 이를 동대문까지 옮기면 한
냥씩 준다 하여 정부 하는 일에 신용을 얻으려 했던
서목동이(西木東移)의 해프닝도 기억할 것이다. 서대문의 복원이라기보다
웃기고 울리고 아프고 울화가 치밀게 하는 그 많은 역사적 증인의
재림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