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용문산 은행나무

bindol 2022. 11. 16. 16:31

[이규태 코너] 용문산 은행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2.12.11 21:08
 
 
 
 


1100년 된 고목인 용문산 은행나무가 지난 40년 동안 적지 않이 7m나
자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발노인의 머리에 검은 머리가 나고 이가 다
빠진 잇몸에 새 이가 돋았다는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몇백만 년 된
고생대(古生代)의 지층에 화석으로 나오는 은행나무요, 지구상의
동식물이 모조리 절멸한 빙하기를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의 원조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은행나무일
것이다. 이 은행나무의 원산지가 황해의 주변이다. 은행나무는 사람 키
두 배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송나라 때 기록이나, 한반도의 대안(對岸)인
일본 규슈(九州)에 가까울수록 나무도 크고 단풍도 아름답다는 일본
기록으로 미루어 은행나무의 본향은 한반도 서해안임이 틀림없다. 유럽에
이 나무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초요, 그 100년 후 괴테가 읊은 것이
유럽문학에 등장한 최초의 케이스다. 그는 '두 개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두개인ㅡ' 은행나무 잎을 두고 '사랑도 그러하려니ㅡ'
하고 읊었다.

원산지라서인지 한국의 정신문화를 대변해내린 은행나무이기도 하다.
고려 공양왕 때 누명을 쓰고 청주 감옥에 갇혀있던 이색(李穡)과
권근(權近)이 홍수에 떼밀려가다가 은행나무에 걸려 살았는데, 임금이
이를 듣고 천심(天心)이 이들 억울함을 은행나무로 하여금 보살핀 것이라
하여 석방했다.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세조 쿠데타에 반기를 들고
순흥(順興)고을에서 군사를 일으켰었다. 이에 반역한 고을이라 하여
순흥이라는 고을 이름을 없애버렸다. 이때 동헌의 은행나무가 시들더니
'은행나무 살아나면 순흥이 회복되고, 회복되면 단종이 복위된다'는
동요가 번졌었다. 그런 지 230년 후 숙종 때 은행나무가 되살아나고
순흥골 이름을 되찾았으며 단종이 복위되었던 것이다. 강화 전등사의
은행나무는 고을 수령이 은행 공납을 과다하게 요구하면 미리 알고
열매를 전혀 맺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은행나무는 불의에
저항하는 한국인의 민심이다.

거기에다 은행잎의 약효도 외국 것의 10~20배나 되고 도시가스인
항(抗)아황산가스 효과도 다른 가로수 잎보다 강한 은행나무다. 곧
용문산 은행나무는 한국의 상징이요, 그 1100년 된 고목이 7m나 자랐다는
것은 국운과 무관하지 않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