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이규태 코너] 張飛廟

bindol 2022. 11. 20. 16:12

[이규태 코너] 張飛廟

조선일보
입력 2002.08.22 19:04
 
 
 
 


장강(양쯔강) 상류 충칭(重慶)에서 강 따라 내려오면 56m 높이의
바위벼랑에 기대어 지은 12층 다락의 석보채(石 寨)가 나온다. 이곳에 이
고을 출신의 세 충신을 모시고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단두(斷頭)장군으로
알려진 여안(麗顔)이다. 이 고을 태수(太守)였던 여안이 장비(張飛)에게
잡힌 몸이 되어 항복을 강요받았다. 이때 여안은 "이 자리에
투항(投降)장군은 없다. 오로지 단두장군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버티었다. 이 기개에 감동한 장비는 포승을 풀고 윗자리에 모시고는
자신의 비례(非禮)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이번에는 장비의 행동에
감동한 여안이 '이만한 장수라면…' 하고 투항을 했다. 이 여안의
충성을 기려 그 고을 이름을 충현(忠縣)으로 바꿨다 한다. 이 충현에서
조금 더 강 따라 내려오면 오른편에 장비의 목을 묻은 장비묘(張飛廟)가
눈에 담긴다. 3m 높이의 장비상이 있는데 8척 키에 표범눈 붕어턱에
호랑이 수염으로 한 길 8척의 대창을 들고 있다. 묘 내의
두견정(杜鵑亭)은 시인 두보(杜甫)가 2년 동안 머물며 30수의 시를 남긴
현장이다.

유비·관우·장비는 태어난 날은 달라도 죽기는 한날에 하기로 결의한
사이였다. 그 관우가 살해되어 목이 적진에 굴러다닌다는 전갈을 들은
유비는 복수의 대군을 일으켰고, 성질 급한 장비는 전군을 모아놓고 사흘
안에 하얀 투구와 하얀 갑옷을 입고 조문(弔問) 진군 채비를 갖추라고
엄명을 내렸다. 사흘 안에 군비를 갖출 수는 없는 일이요, 어기면
살해당할 것이 뻔한지라 부하인 장달과 범강이 술에 취해 잠든 장비의
목을 베어 강물에 버렸다. 그 목이 흘러흘러 적국인 오나라 접경에
이르자 빙글빙글 돌며 흘러가지 않는지라 어부가 이를 주어 둔덕에 묻은
것이 바로 지금의 장비묘다. 지금도 장강을 오르내리는 배들은 이 묘
앞을 지나면서 큰절을 하게 마련인데 장비의 영혼이 노하면 역풍이 불기
때문이라 한다.

적벽대첩 후에 장비가 태수로 있으면서 북을 치며 수군을
연병(練兵)했던 뇌고대(雷鼓臺)도 장비묘에서 멀지 않다. 이곳에도 북
치며 칼을 뒤흔드는 장비상이 서있음을 보았다. 장강변의 석보채와
장비묘 그리고 뇌고대, 이 세 곳의 장비 유적지가 삼협댐으로 수몰되게
돼있어 이전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어 그 연유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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