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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荀씨 姓考

bindol 2022. 11. 20. 16:14

[이규태 코너] 荀씨 姓考

조선일보
입력 2002.08.20 19:46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희성(稀姓)을 세 갈래로 갈라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한자성이 그것이다. 한글 ㄱ 아래 ㄴ을
합쳐놓은 것 같은 「먀」씨가 안동 예안에 살고 있었는데 그 내력은
이렇다. 남한산성에서 수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 성이 없는 병졸이
있었다. 힘이 남달랐던지 이괄(李适)의 난에 남한산성으로 피란하는
임금님을 등에 업고 달리는 영광을 입은 것이다. 이 영광을 대대로
후손에게 물리고자 사람을 업은 형상인 「ㄱ+ㄴ」으로 글자를 만들어
성을 삼고 '먀'로 읽었다.

하늘 천(天)자 아래 새 조(鳥)를 합친 궉씨라는 성도 있었다. 17세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의 고증에 의하면 순창이 본관인 궉씨 자손들에
사대부가 적지 않았다 했다. 옛날 어느 성 없는 백성에게 아전이 성을
따져 묻자 어머니가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데 난데없는 폭한이 나타나
겁탈을 해서 태어난 몸이라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고 했다.
봉변당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폭한은 간데없고 큰 새 한마리가 궉 궉
소리내며 날고 있었다는 어머니 말을 전하자 하늘 천자와 새 조자를 합자
궉가로 성을 정해주었다 한다.

갑오개혁 후 호적법의 시행과 더불어 무식한 관리들에 의해 오기(誤記)된
성이 희성으로 행세해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사(謝)씨는 사(史)씨의
잘못이요, 채(菜)씨는 채(蔡), 목(穆)씨는 목(睦), 모(慕)씨는 모(牟),
빙( )씨는 신라 때 빙고에서 일했던 빙(氷)씨의 잘못으로 생겨난
희성이다. 셋째로 중국성이 동래하여 정착한 희성을 들수 있는데 이번
보트 피플로 남하한 순(荀)씨 성도 그 중 하나다. 순씨로 荀·順·舜·淳
4성이 있었는데 순(荀) 성은 숙종 때 기록인 「도곡총설(陶谷叢說)」과
정조 때 기록인 「앙엽기( 葉記)」에 희성으로 나온다. 성선설(性善說)을
받든 「맹자(孟子)」에 대립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 유학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던 「순자(荀子)」의 저자 순경(荀卿)이며
조조(曹操)가 「나의 제갈량」이라던 순욱(荀彧) 등을 배출한 명문으로
고려 현종 때 임금의 이름인 순(筍)을 휘(諱)했다하여 성을 손(孫)씨로
바꾼 적도 있었으니 고려 전반에 들어온 오래된 성이다. 순씨 4성 가운데
후손이 가장 많은 편이나 1985년 조사에서 235가구 990명이 살고 있는
희성을 못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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