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만물상] 카타르의 두 번째 ‘네이션 빌딩’

bindol 2022. 11. 21. 06:23

[만물상] 카타르의 두 번째 ‘네이션 빌딩’

입력 2022.11.19 03:08
 
 

대항해 시대를 연 포르투갈은 16~17세기 페르시아만(灣) 일대를 150여 년 지배했다. 그런데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이라며 정복을 포기한 곳이 있다. 지금의 카타르다. 카타르는 여름 기온이 최고 50℃까지 오른다. 습도도 문제다. 다른 사막은 낮은 습도 덕에 밤엔 견딜 만하지만, 경기도만 한 땅 거의 전체가 바다에 둘러싸인 카타르는 밤낮없이 한증막이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땀이 솟는다.

▶카타르는 아랍어로 ‘국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1971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까지 국가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땅이었다. 산업도 없고 농사도 못 지었다. 오래도록 진주조개잡이가 생계 수단이었다. 그마저 20세기 초 인공 진주가 등장하며 파국을 맞았다. 2만명 채 안 되는 인구가 먹고살 길을 찾아 주변 국가로 흩어졌다. 항구도시였던 수도 도하는 해적 소굴로 악명 높았다.

▶카타르 왕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 개혁을 시작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적극 개발을 시작했다. 1인당 월 500만원이 넘는 기본 소득과 의료·수도·전기를 무료로 제공하는 복지 천국도 그 덕에 가능했다. 카타르 국가 재정 수입 90%가 천연자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것밖에 없다. 경제성장률도 0%대로 정체돼 있다. ‘석유 이후’를 고민하는 이유다. 영국에서 함께 독립한 아랍에미리트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경쟁하고 있다. 월드컵 유치도 그 일환이다.

 

▶뜨겁고 습한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지로 최악이다. 이를 극복하려고 지난 10년간 돈을 쏟아부었다. 그 상징이 냉풍구 1500여개를 갖춘 에어컨 경기장이다. 카타르 프로팀에서 뛰었던 한국 선수는 “가만히 있을 땐 겉옷을 걸쳐야 한다”고 했다. 나라 전체는 거대한 미술관으로 꾸몄다. 제프 쿤스가 선보인 ‘듀공’, 덴마크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이 사막 한가운데 세운 조형물 등 100점 넘는 미술품이 들어섰다. 여기에만 지난 10년간 해마다 1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문화를 앞세워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 표현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간의 유치 과정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FIFA 언커버드’는 이번 월드컵이 카타르인에게 ‘국가적 목표를 성취해 나가는 원동력’ ‘국가 건설 과제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자원 부국 이후를 대비하는 두 번째 ‘네이션 빌딩’이라는 의미다. 축구 경기가 실력 겨루기를 넘어 한 나라의 미래를 새로 여는 총력전 도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도 이번 월드컵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