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읽기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3] 마음 챙김의 예술

bindol 2022. 12. 9. 19:30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43] 마음 챙김의 예술

입력 2022.12.02 03:00
 
 
장태원, Remains003, 2014.

에너지원을 공급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듯이 마음에도 규칙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려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태도가 유행을 넘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함께 겪은 팬데믹이나 경기 침체, 줄을 잇는 사건 사고 등의 영향인지 어느새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나 보다. 2018년 이후에 출시된 명상 애플리케이션만도 2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바야흐로 마음 챙김의 시대이다.

유독 수양하듯이 완성되는 작품들이 있다. 장태원의 ‘리메인즈(Remains)’ 연작도 그렇다. 제목이 말하는 ‘남은 것들’은 유적이나 유해처럼 선행된 어떤 행위나 과정을 전제로 한다. 그는 ‘사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사진의 본질인가’ 하는 작업적 질문을 이어왔는데, 이 연작에서 아주 밝거나 어두운 부분을 없앰으로써 사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평면적 디테일을 창조했다.

눈으로 대상을 관찰할 때는 일정 정도 이상의 밝기를 지닌 빛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 빛의 질적인 특성인 조사 각도나 확산 정도에 따라 대상에 대한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구름 한 점 없는 한낮의 모래사장에 쏟아지는 햇빛과 만찬 테이블 위에 켜진 촛불은 주인공을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비춘다.

 

장태원은 조명의 방향을 바꿔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은 후, 각 사진에서 세부 정보를 가장 많이 보여주는 중간 밝기의 부분을 취한 후 합성해서 한 장의 작품을 완성했다. 빛의 질적 효과를 걷어내고 온전히 대상이 지닌 형태와 색이 세세하게 드러나도록 한 것이다. 그림자가 없으니 언뜻 그림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장 사진적인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 작업은 길고 지루한 촬영과 보정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시간을 통해서 작가는 사진과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였다. 램프가 비추고 있는 사과는 그림자도 없이 수많은 색을 입고 당당하다. 흔들림 없이 단단하게 뿌리 박은 큰 나무처럼 사진 속 의자는 어떠한 조명에도 변하지 않을 모습으로 남았다. 마음을 수련하는 사람처럼 작업을 이어 온 작가의 시간이 작품을 들여다보는 나의 마음도 단련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