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치제도에선 일반 시민보다
당 지도부·열성 지지층이 중요해
낡은 당파 싸움이 되풀이된다
“민주주의 응답하라”던 촛불 집회
이제라도 시민 요구에 민감하도록
정당·선거 제도를 개혁할 때다
현 정치제도에선 일반 시민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2년의 시간은 한국 정치에선 꽤 긴 시간이다. 2년 전 늦가을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민주정치가 시민들에게 응답하라고 외쳤었다. 그 이후 우리 민주정치는 시민들에게 응답하는 방향으로 얼마나 진화했을까? 오늘날 시민들의 눈높이는 협치와 균형의 민주주의를 향하고 있지만 여의도 정치의 현실은 낡은 싸움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야당 의원의 연이은 폭로와 청와대의 맞공세를 민주정치의 견제와 균형이라 부르기는 민망하다. 유은혜 후보자의 부총리 임명은 행정부-입법부의 협치가 얼마나 어려운 곡예인지를 말해 준다. 게다가 야당-청와대의 갈등은 열성적 지지자들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한켠에서 심재철 의원의 과거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흘러넘친다. 다른 한편에선 국민의 귀한 세금이 과연 제대로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진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쪽 열렬 지지자들의 아드레날린은 한껏 분비되고 있겠지만 대다수 시민의 한숨과 실망은 깊어만 간다. 정치학자들은 협치보다 갈등에만 몰두하는 한국 정치를 (1)경멸조로 비난하거나 (2)당파 갈등의 해법을 나름 모색해 온 선진 민주주의의 사례를 들어가며 점잖게 훈계해 왔다(물론 이것이 안전한 길이다). 독자들은 학자들의 경멸조 비판이 진부한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후련함을 느껴왔을 수도 있다. 독자들은 또한 선진 민주주의의 사례를 전해 들으면서 부러움·무력감 또는 이질감을 느꼈을 듯도 하다. 필자는 우리 정치의 높은 갈등 성향이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라거나 혹은 우리 정치만의 유별난 문화 때문이라는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민주화 30년의 역사 동안, 특히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흔들어 일깨웠던 2016년 촛불집회 이후 협치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매우 소홀한 결과였다고 본다. 달리 말해 필자는 제도의 설계 방향에 따라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고 본다. 장훈칼럼 의원들이 좁은 당파성보다는 시민들 일반의 요구에 민감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만 지금의 극심한 정파싸움이 완화될 수 있다. 미국 의회가 우리 국회보다 당파 대립이 다소나마 적은 것은 미국 의원들의 자질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미국 정당들이 시민에게 열려 있는 높은 개방성과 분권화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대안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①지역구 의원 후보 선출 과정이 일반 시민에게 전면 개방되는 개방형 경선제를 예외 없이 실시해야만 의원들을 전투적 지지자들의 압력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또한 필자는 지난 7월 이 지면에서 ②비례대표의원 후보를 여성·청년 중심으로 완전추첨제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다. ③시민들의 기대보다는 당리당략에 앞장서는 의원들에 대한 국민소환제 도입 역시 의원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가의 문제로 좁혀진다. 한 가지 방안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이제라도 시민사회가 두루 참여하는 정치개혁시민회의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야 의원들만으로 구성되는 국회 안의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내년 봄까지 의미 있는 제도 개혁에 합의할 거라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2003~2004년의 경험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박관용 의장은 시민단체·전문가·선관위가 두루 참여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만든 개혁 시안을 갖고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압박했고, 그것이 2004년 제도개혁의 토대가 됐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에게 응답하라”고 외쳤던 시민들의 함성으로 새 행정부가 출범했지만 제도 개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2주년을 맞고 있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가자 여야 정당은 낡은 관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시민들은 지금 낡은 체제로서의 여의도를 바라본다. 시민들은 여의도 광장으로 모여야 하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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