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 교통전문기자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처음 도입된 건 1903년으로 고종 황제가 즉위 40주년을 맞아 미국 공관을 통해 포드 승용차 1대를 들여왔다. 그 뒤 1912년 진주에 살던 한 일본인이 8인승 포드 승합차로 진주~마산, 진주~삼천포 구간 등에서 승객을 실어나르는 자동차 운송업을 최초로 시작했다. 시외버스 영업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차량 크기로 따지면 대형 승용차 정도였다. 같은 해 또 다른 일본인은 포드 승용차를 들여와 택시 대절(貸切) 영업을 했다고 한다. 택시 대절은 거리를 운행하다 승객을 태우는 게 아니라 미리 계약을 맺고 시간 단위, 또는 하루 이틀 단위 등으로 기사와 함께 택시를 빌려주는 형태다. 기사 딸린 렌터카와 유사하다.
1919년엔 국내 최초의 택시회사가 설립됐다. 역시 일본인이 세운 ‘경성 택시회사’로 승용차 두 대로 영업을 시작했다. 주로 시간제 임대 형식으로 운영됐는데 한 시간 요금이 쌀 한 가마 값이었다고 한다. 1926년엔 아사히택시회사가 일본에서 들여온 미터기를 달고 영업을 시작해 운행 거리 만큼 요금을 매기는 방식이 본격화됐다. 당시 기사들은 멋쟁이로 통했다. 귀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데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다 6.25 전쟁을 거쳐 1950년대 중후반에는 미군 차량을 개조해 만든 ‘시발택시’가 등장했고, 60년대 들어서는 새나라자동차가 도입되며 택시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택시기사는 괜찮은 직업이었다. 자동차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서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 택시 기사의 위상은 전혀 다르다. 청년층의 유입이 거의 없어 50~70대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 전국적으로 5만대 이상의 택시가 공급과잉으로 추정될 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 요금 인상도 쉽지 않으니 수입도 신통치 않다. 게다가 ‘불친절’ ‘승차거부’라는 부정적 이미지 탓에 국민적 반감도 크다. 최근엔 첨단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우버’ ‘카카오 카풀’ 같은 차량공유사업까지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으니 앞으로 더 어려워질 건 뻔하다. 그렇다고 전 세계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는 차량공유사업을 우리만 막을 순 없다. 미래의 일자리, 먹거리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택시업계가 이들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게 최선이다. 차량공유업계의 수익 중 일부를 택시 지원에 투자하는 등 공존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택시업계 역시 부단한 혁신으로 나름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멋쟁이까진 아니더라도 ‘불친절한’ 택시란 말은 사라지게 말이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