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이정재의 시시각각] GM·택시, 그리고 자율주행차

bindol 2018. 10. 25. 05:23


현재·과거에만 매달리면
미래의 시간을 잃게 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3년쯤 전 포스코의 H사장이 뜬금없이 운을 뗐다. “포스코에 가장 큰 위협이 뭔지 아느냐?” 중국 철강회사, 무역전쟁, 포트폴리오, 권력까지 나왔지만 ‘노’였다. “답은 인공지능(AI)”이라는 그의 설명은 이랬다.
 
“곧 차량 공유의 시대가 온다. 집집마다 차를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자가용은 2시간 타고 20시간 세워놓는다. 자율주행차를 공유하면 차 한 대로 열 가구가 사용할 수 있다. 자동차 수요가 급속히 줄면 포스코엔 직격탄이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차량용 특수강으로 맞서 왔던 포스코도 다른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3년이 지나 올 초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좀 더 구체적인 숫자를 내놨다. 2050년엔 현재 10억 대 넘는 자가용이 약 3억 대로 줄고 자율주행차가 2억 대가량 활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먼 훗날 얘기가 아니다. E H 카는 “역사는 미래의 강물에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흐른다”고 했다. 이미 미래의 강물 자율주행차는 현재의 시간을 뒤틀고 있다. 요즘 두 가지 큰 이슈, 한국GM·택시업계 사태도 그렇다.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미래의 눈으로 보면 한 뿌리다. 바로 자율주행차가 원인이다.
 
한국GM부터 보자. GM은 연구개발 인력을 따로 떼 회사를 나누기로 했다. 노조는 “먹튀 수순”이라며 반발한다. GM이 호주에서 연구인력 300명만 달랑 남기고 철수한 사례를 근거로 든다. 산업은행도 “GM의 이익만 추구한 것”이라며 법적 조치를 밟고 있다. 정부는 눈치만 보고 있다. 자칫 잘못 끼어들었다가 GM에 한국 탈출의 빌미를 줄까 걱정해서다.
 
과거나 현재의 눈으로 보면 선택지는 별로 없다. 8000억원으로 GM 직원 1만5000명의 고용을 10년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동걸 산은 회장의 말마따나 “잘한 장사”다. 약속대로 돈을 주고 GM의 처분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미래의 눈으로 보면 얘기가 다르다. 10년 뒤엔 어쩔 건가. 휴대전화가 집 전화를 없앴듯 자율주행차는 자가용을 없앨 것이다. 전기차든, 수소차든 상관없다. GM 사태를 계기 삼아 한국 차산업의 골격을 바꿀 때다. 한국을 자율주행차의 메카로 만들자. 그러려면 뭘 해야 할지는 정부·노조·정치권이 너무 잘 알 것이다. 규제 권력과 기득권부터 놓아야 한다. 성공하면 10년 뒤 GM이 스스로 매달릴 것이다. 나가라고 등 떠밀어도 안 나갈 것이다.  
     
택시업계가 반대하는 승차 공유는 어떤가. 결론부터 말하면 부질없는 짓이다. 10년 뒤엔 택시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택시업계는 완력으로 5년 전 우버를 쫓아내고 콜버스·풀러스·차차의 공유 서비스를 잇따라 좌절시켰다. 그런 자신감이 지난주 7만 명의 택시기사를 광화문에 모이게 했다. 정치권과 청와대까지 긴장했다고 한다. 벌써 카카오의 카풀도 좌초 위기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결과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의 한국판 서문에 “북한은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수 있다”고 썼다. 기득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반대다. 25만 택시기사의 눈치를 보는 정치권은 승차 공유 금지·규제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이미 3개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그렇게 한국만 승차 공유의 갈라파고스가 될 것이다. 10년 뒤 자율주행차가 본격화하면 한국 시장은 무방비로 열릴 것이다. 대항할 업체가 없으니 우버·그랩에 시장을 송두리째 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후회하면 늦다. 아직 시간은 있다. 승차 공유 업체와의 적극적 공생, 택시업의 환골탈태를 통해 살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당장 흘러간 과거의 붉은 깃발부터 내려놔야 한다. 150년 전 자동차도 막지 못한 붉은 깃발로 미래의 자율주행차를 어찌 막겠나.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이정재의 시시각각] GM·택시, 그리고 자율주행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