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남덕우 신임 재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중앙포토]
1970년 3월 경제기획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나는 특수대학원 설립안을 설명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 장관들을 상대로 하는 브리핑이라 떨릴 수밖에 없었다. 하버드대에서 썼던 논문의 내용대로 이공계 특수대학원 설립은 인재의 해외 유출을 막고 과학기술 인력을 꾸준히 양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역설했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과학기술 발전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인재 양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583)
<35> 남덕우 재무장관의 절묘한 해법
당정협의회 오른 과학대학원 설립안
실세인 문교부 장관이 강력히 반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선 남 장관
과학기술처가 담당하는 해법 제시
카이스트의 전신 KAIS 잉태 순간
나는 손에서 땀을 흘렸다. 이때 박 대통령이 다시 말문을 열고 “이 중에 대학을 잘 아는 남 박사의 의견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박 대통령이 남 박사라고 부른 인물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남덕우(1924~2013년) 재무부 장관이다. 공이 홍 장관으로부터 남 장관으로 넘어간 셈이다. 박 대통령의 질문에 차분하고 또렷한 말투로 대답하던 남 장관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문교부 장관님의 걱정은 타당하지만, 대통령께서 추진하시려는 산업발전을 이루려면 인재가 절대 필요합니다. 문교부의 반대가 심하니 이공계 특수 대학원은 문교부 예산으로 추진하시지 마시고 경제개발 특별예산으로 추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공계 특수대학원을 설립하되 문교부에는 일을 맡기지 않는 절묘한 해법이었다. 시대적 타당성과 대통령의 의중, 그리고 타 부처의 반대를 모두 고려한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대립적인 사안을 다룰 때 사람들은 ‘해야 하는 이유’와 ‘하면 안 되는 이유’로 나뉘어 설전을 벌인다. 이럴 경우 토론이 대개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덕우 장관은 무의미한 논쟁을 벌이는 대신 ‘일이 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고민해 해결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40대 대학교수이던 그가 69년 경제과학심의위원을 거쳐 재무부 장관에 발탁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 장관은 재무부 장관에 이어 74~78년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맡아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핵심 경제 관료로 80~82년 국무총리도 지냈다.
남 장관이 발언하는 동안 박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는 듯했다. 이윽고 박 대통령은 단호한 말투로 “이 특수대학원 설립은 문교부가 아닌 과학기술처가 맡아서 추진하시오”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되는 한국과학원(KAIS) 설립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