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는 역사 되풀이 자유한국당이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을 직무유기, 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지난 정권에서 비서실장과 여러 수석들이 당했던 일들이 불과 2년 만에 고스란히 되풀이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지난 정권에서 김기춘 비서실장,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조윤선 정무수석, 우병우 민정수석, 이런 사람들도 대개 직권남용, 그리고 직무유기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 같은) 정권 실세 비리 의혹을 묵살한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하고, 민간인 사찰은 직권 남용에 해당"하기에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판박이’ 되풀이라고 해야 할지, 데자뷔라고 해야 할지, 국민들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 ‘김태우 리스트’ 前정권 인사 찍어내기 한국당은 김태우 수사관이 민간인과 전(前)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정보가 포함된 ‘김태우 리스트’ 100여 건을 공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임명된 공공기관장이 ‘표적 1호’다. ‘한국금융연수원장 부적절 처신동향’, ‘산업은행장 관련 비위 동향’, ‘한국자산관리공사 비상임 이사, 홍준표 대선자금 모금 시도’ 같은 것들이다. 평생을 ‘금융 맨’으로 살아온 한국금융연수원장 조영제 씨는 지난 4월에 임기도 되지 않았는데 사표를 냈다. 뼛속까지 ‘은행 사람’인 산업은행장 이동걸 씨는 지난 8월에 임기와 상관없이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둘은 모두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사람들이었다. 지난해 7월 김태우 수사관의 보고서에 등장한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도 임기를 5개월 남겨 두고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7월 김태우 수사관은 김학송 사장이 하청 일감을 몰아주기를 했다며 비위 의혹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김학송 사장은 보고서 제출 이틀 뒤에 사표를 던졌다. 전광석화처럼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던 셈이다. 김학송은 3선(選)의원으로 친박계 중진이다. 그 무렵에는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 하성용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 같은 공기업 수장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고 물러나던 시기다. 김학송 전 사장에 대한 비위 보고서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처리를 했는데,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은 보고서를 제출 받고도 두 달 가까이 검증작업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김태우 수사관은 말하고 있다. 이강래 사장도 역시 특정 업체의 커피 기계나 원두를 납품할 수 있도록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이번에는 "(윗선에서) 일언반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김태우 수사관 얘기를 더 들어보자. 그는 "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에 따라 전(前) 정부 인사들의 비위를 찾아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김학송 전 사장의 비위 의혹을 올리자) 상관에게 칭찬도 받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친문(親文) 인사들과 대선 공신들을 공공기관장 자리에 앉힐 수 있도록 전 정부 인사 비위를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표적 감찰’에 걸리면 당해낼 공공기관장이 없다. ◆전형적인 이전 정부 탓에 꼬리 자르기 김태우 수사관의 상급자인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은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전성인 교수 문건, 방통위 주파수 경매 보고서, 이 두 건은 "보고서를 보고받은 바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두 건, 코리아나 호텔 관련과 한국당 대표 대선자금 건에 대해서는 "(김 수사관이) 이전 정부에서 민간 영역까지 다양한 첩보 수집을 하던 관행을 못 버리고 특감반장에게 보고했다"고 했다. 또 언론사 관련 건에 대해서는 "언론 사찰의 소지가 있으니 작성하지 말라고 해서 이인걸 특감반장이 폐기한 보고서"라고 했다. 요약하자면, "보고 받은 바 없다", 혹은 "이전 정부의 관행이어서 못하게 했다", "폐기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은근히 지난 정권 탓을 하고 있다. 다른 일이 터졌을 때 대응 방식과 비슷하다. 김태우 수사관은 외근이 많은 특감반원의 업무 특성상 초기 보고의 경우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이뤄지고, 보고서 초안 작성은 그 후에 이뤄지기 때문에 이를 상부의 지시나 묵시적 승인으로 볼 수 있다는 말했다. 텔레그램을 통해 사전 조율이 우선 이뤄지기 때문에 자의적 보고서 작성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 수사관은 또 비위가 불거진 뒤 특감반장이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고 했다. 김 수사관은 "(청와대 내부 감찰을 앞두고 있던 지난달 5일) 이인걸 특감반장이 나를 부르더니 ‘나 너 좋하는 거 알지. 살아 돌아와라’라고 말하며 ‘텔레그램 방에서 나가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태우 수사관에서 위로 올라가면, 김태우 수사관, 그 바로 위가 이인걸 특감반장, 그 위가 박형철 반부폐비서관, 그 위가 조국 민정수석, 그 위가 임종석 비서실장이다. 지금 현재 김태우 수사관은 쫓겨났고, 이인걸 특감반장은 사표가 수리됐다. 다섯 중 아래로 둘만 꼬리 자르기를 한 셈이다. ◆또 상영되는 정권의 비열한 얼굴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사흘만인 작년 5월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가 잘못됐다"면서 재조사 방침을 밝혔다. 정윤회 문건은 박근혜 정부때 특감반에 해당하는 공직기강 비서실 박관천 행정관이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를 비선 실세로 지목해 보고했던 내용이다. 조 수석은 박 정부 민정수석실이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묵살했던 잘못이 왜 벌어졌는지 파헤쳐서 바로잡겠다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의 청와대는 자신들이 운영해 온 특감반 활동 내용이 드러나자 ‘미꾸라지의 일탈 행동’이라며 전 정부와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승자독식, 이긴 자가 몽땅 다 차지하는 것, 지금 정권뿐만 아니라 과거 거의 모든 정권이 비슷했다. 그러나 지금 정권도 더했으면 더 했지 과거 정권 못지않다는 것을 우리는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심지어 청와대 감찰 조직과 검찰을 동원해서 전 정권 사람들의 비위를 들춰내고 찍어내는 수법은 살아있는 정권의 가장 비열한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권이기에 더 실망스럽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아무튼 놀라울 정도로 집요한 전(前) 정권 인사 찍어내기, 그리고 너무 과도하게 일을 벌인 끝에 찾아오는 청와대 내부 고발과 감찰 보고서 파문, 그리고 이어지는 야당의 청와대 인사에 대한 직권남용 고발장, 이런 것들이 마치 되풀이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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