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짓말을 못 해" "난 평생 손해만 보고 살아"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을 못 봤다. 자신을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단정해도 자주 틀린다. 1990년대 이인화의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제목의 힘도 컸다.
직전까지 청와대 감찰반에 파견돼 근무했던 수사관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감찰반에서 법규를 벗어나 정보 수집을 해왔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아침 닭이 울기 전 정부는 여러 번 부인했지만, 그때 튄 침이 채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정황이 나왔다. '민간인 사찰' '언론 사찰'이라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담긴 컴퓨터 화면이 공개된 것이다.
이 사건 초기, 정부의 대응은 '누구에게 감히' 식이었다. "문재인 정부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유전자'로 대응 논리를 세우는 건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며칠 전 국제사회를 향해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는 DNA가 없다"고 했다. "170여 년 전 아편전쟁 이후 중국 부활의 꿈에 이토록 가깝게 다가간 적이 없다"고 말했던 그 시진핑이 말이다.
정치인들은 '난 뼛속부터 다르다'며 유전자론을 들고 나오지만, 이것도 공부가 짧아 그렇다. 요즘 많은 과학자가 '유전자 결정론'과는 대척점에 있는 '후성유전학'에 끌리고 있다. 매우 복잡한 이론인데, 쉽게 말하면 '배운 버릇'도 유전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고결한 유전자'는 없다. 품위 있는 행위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전략은 '고발자가 저질'이라고 폄하하는 것이었다. '6급에 휘둘려'(김의겸 대변인), '미꾸라지 한 마리'(윤영찬 홍보수석)…. 김태우 수사관은 진보가 '적폐'라고 부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문재인 청와대가 자진해서 썼다. '동향 첩보'에서는 단연 발군이었다는 사람을 '6급 주사'로 격하하는 이유는 따로 있을 것이다.
그를 '비위 혐의자'라고 비난하는데, 이 정부의 '내부고발자' 우대 정신에도 어긋난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공익신고자보호법'을 통해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자 보호조치를 한층 더 강화했다. 공익신고자가 '순수한 영혼'이라는 뜻은 아니다. "감옥에 있을 사람이 법 뒤에 숨어 의인(義人)인 척한다"는 사례가 여럿 있다. 다 제쳐두고, 국정농단 사건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의인'이라는 표현했던 고영태씨. 그의 삶의 흔적은 '비위 혐의를 받는 청와대 6급 주사'보다 얼마나 고귀했던가. 그 수사관이 구린 행위를 했다면 딱 그만큼의 처벌을 하면 된다. 물론 그것보다 크게 망신당하고, 처벌될 테지만.
'자기방어'가 급하면, 말이 거칠어지고 혀가 꼬인다. 그 수사관의 정보를 '불순물'이라더니, 곧 '보고서 작성을 위한 로데이터(원자료)'라고 했다. 논리가 꼬인 거다. 이쯤 되면 언론이 미울 거다. 사건을 단독 보도한 언론을 향해 '휘둘린다' '격에 맞지 않는다' 깎아내리고, 다른 언론에는 '보도를 자제하라'고 한다. 진보 언론 출신, 진보 정권
대변인이 툭하면 '보도 자제'를 언급한다.
민주당 대변인이 청와대를 향해 "기죽을 필요 없다. 이전 정부 청와대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법부 기밀(機密)문서까지 다 털어 보인 정부다. '중대한 국가 기밀' 같은 말은 하지 말라. '적폐 DNA' 정부가 썼던 용어다. 그냥 탈탈 털어 그 '우월한 유전자'를 증명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