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의혹 목록 나왔는데 팩트로 해명할 생각 않고 '범법자, 미꾸라지' 매도만 임기 초 이벤트 재미 보더니 곳곳서 탈 나는 國政마저 말장난으로 수습하나
김창균 논설주간
사찰 의혹을 제기한 특감반 김태우 수사관을 민정수석은 '비위 행위자', 여당 원내대표는 '범법자'라고 불렀다. 감찰 결과 드러난 김 수사관의 대표적 비위는 건설업자 최모씨로부터 12차례에 걸쳐 438만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것이다. 한 회 평균 36만원이다. 비위는 비위겠으나 정권이 작심하고 먼지 떤 결과물로는 물건이 작다.
두 번째 비위는 김 수사관이 수집한 정보를 언론에 알린 비밀유지 의무 위반이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폭로한 문제 정보는 "지시하지도, 보고받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김 수사관 혼자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 정보도 국가 비밀에 속하는지 궁금해진다.
김 수사관은 재작년 5, 6월 건설업자 최씨에게 특감반에서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인사 청탁을 했다. 청탁을 전달할 상대는 최씨의 고등학교 후배인 민정수석이었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최씨를 알지도 못한다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미수에 그친 청탁이다. 그게 감찰에 걸린 세 번째 비위다. 여기서 다른 의문이 고개를 든다. 김 수사관은 재작년 7월부터 특감반에서 일했다. 상급자들은 "김 수사관은 적폐 정권의 관성을 버리지 못했고, 그래서 특별 관리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인사 청탁도, 능력도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명박, 박근혜 '적폐 정권'서 일했던 그가 어떻게 문재인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을까.
국민소통수석은 김 수사관을 '미꾸라지'라고 불렀다. 여당 전 의원은 그 말을 받아 "미꾸라지급도 못 된다. 피라미"라고 했다.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이 김 수사관 주장을 뒷받침하는 추가 의혹을 폭로하자 여당은 "망둥이가 뛰니까 꼴뚜기도 뛴다"고 했다. 두 사람은 문 정부의 허물을 들춰낸 죄 때문에 어류, 그것도 미꾸라지, 피라미, 꼴뚜기, 망둥이 같은 잡어 신세가 됐다. 문 정부 사람들은 전 정권의 내부 고발자들은 '의인'이라고 불렀었다.
청와대 대변인은 김 수사관을 '6급'으로 호칭했다. "언론이 6급 말에 놀아나서 되겠느냐"고 훈계조로 말했다. 1급 대변인 눈높이에서는 6급이 발바닥 근처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는 그 6급의 지시를 받고 '블랙리스트' 성격의 문건을 작성했다고 실토했다.
정권 차원의 의혹이 불거지면 야당은 말로 시비 걸고 여당은 사실로 반박하는 게 일반적인 공식이다. 그런데 이번엔 정반대다. 야당은 김 수사관 컴퓨터에 남아있는 104건의 첩보 보고 목록을 제시했다. 그중 10건은 누가 봐도 사찰이 의심되는 제목을 담고 있다. 그 문건이 실제 사찰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그 문건들이 누구에게까지 보고됐는지를 따지는 게 순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런 시시콜콜한 팩트 다툼엔 뜻이 없어 보인다.
민정수석은 민간 사찰 의혹에 대해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은 전 정권과 다르다"고 했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 DNA에는 민간 사찰이 없다"고 했다. 교통 단속에 걸린 운전자가 법규 위반 여부를 다투는 대신 "나 누군지 몰라?"라고 위세를 부린다. 문재인 정부 신분증엔 면책특권 도장이라도 찍혀 있는가.
민정수석은 세 사람이 말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를 인용했다. 김 수사관과 야당, 언론이 합작해서 근거 없는 의혹을 부풀린다는 주장이다. 여당 의원은 "적폐 세력이 반격에 나섰다"고 했다. 고사성어, 속담, 정치공학 음모론까지 동원한 '레토릭'으로 방패를 삼는다. 김 수사관을 범법자, 어류, 6급이라고 얕잡아 부르면서 그가 촛불의 세례 속에 탄생한 '성스러운 정권'을 고발하는 것은 '일탈 행위' '희대의 농간' '분탕질'이라고 매도한다.
문재인 정권의 문학적 감성은 진작부터 번뜩였다. 작년 8월 리비아 피랍사태 때 청와대 대변인은 '사막의 침묵' '타는 목마름' 같은 시어(詩語)로 논평을 썼다. 청와대 비서실장은 "첫눈이 내리면 탁현민 행정관을 놔주겠다"고 했다가 정작 첫눈을 보면서는 "만주 대륙을 떠올렸다"고 했다.
임기 시작 며칠 만에 대통령과 참모들이 와이셔츠 바람으로 테이크 아웃 커피잔을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니는 모습이 언론을 장식했다. 그 사진 한
장만으로 "전 정권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탄성을 자아냈다. 이런 기획력이 정권 초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톡톡히 한몫했다. 그러나 콘텐츠가 빈 상자를 포장지로 눈속임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국정 곳곳에서 고장난 소리가 나는데 말장난으로 수습하려는 참모들 태도에 국민들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벤트로 떴던 정권이 레토릭으로 내리막길을 재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