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604

[고전 속 정치이야기] 화근제거(禍根除去)

[고전 속 정치이야기] 화근제거(禍根除去)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BC 299년 조(趙)의 무령왕(武靈王)은 서북지방을 경략하기 위해 10세에 불과한 아들 하(何)에게 전위했다. 그가 혜문왕(惠文王)이다. 비의(肥義)를 혜문왕의 보좌역으로 삼고 자신은 주부(主父)라 칭했다. 북방민족의 뛰어난 기병전투를 익히기 위해 스스로 바지를 입고 활을 쏘며 전투력을 충실히 다진 그는 국제분쟁에서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치마 비슷한 옷을 입었던 중국인들은 기마전을 펼치기가 불편했다. 무령왕은 지금까지 주력이었던 전차부대를 기병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독단적이었으며, 편애가 심했던 그는 외환은 제거할 수가 있었지만 내우를 제대로 처리하지는 못했다. 혜문왕은 무령왕이 총애하는 오왜(吳娃)의 아들이었다...

[고전 속 정치이야기] 변화적응(變化適應)

[고전 속 정치이야기] 변화적응(變化適應)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무호(蕪湖)의 호개문묵점(湖開文墨店)은 중국의 휘묵(徽墨) 4대 명품점 가운데 하나였다. 안휘성 휴령(休寧)의 호개문로점(湖開文老店)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호(湖)라는 글자를 상호에 넣었으며, 삼불가(三不可) 즉 조상의 법도에 의존하지 않고, 성문화된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며, 원래부터 잘 나가는 점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3대 경영원칙을 내세워 후발주자로서 전국에 명성을 날렸다. 호개문묵점은 1872년 적계(積溪)의 상인 호천주(胡天柱)가 설립했다. 상호는 남경 공원(貢院)의 현판 개천문운(開天文運)에서 따왔다. 둔계(屯溪)와 휴령에 점포를 개설하고 제조공장을 세웠다. 그는 사업 아이디어와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규정을 세웠다. 후발주자들은 ..

[고전 속 정치이야기] 국민통합(國民統合)

[고전 속 정치이야기] 국민통합(國民統合)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대선이 끝났다. 당선자의 과거 면모는 협객이 연상됐다. 근대에 이르자 중국은 자본주의를 앞세운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받고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재기를 꿈꾸던 사람들은 중국문화가 서학에 억눌리는 상황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했다.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감을 임무로 여겼던 사람들이다. 시대를 담당한다는 정신과 비장한 의식을 품은 이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사대부 출신이었지만, 기꺼이 유협을 자처했다. 생존방식과 행위준칙은 묵협(墨俠)에 따랐다. 담사동(譚嗣同)이 대표적이다. “묵학은 두 개의 학파가 있었다. 첫째는 임협(任俠)으로 나는 ‘인(仁)’의 핵심으로 여긴다. 둘째는 격치(格致)로 나는 ‘학(學)’으로 여긴다. 인이 학이고, 학이 인이다. 지..

[고전 속 정치이야기] 포정해우(庖丁解牛)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관자(管子) 제분(制分)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돈을 벌려고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한다고 반드시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부자가 되는 일을 해야 부자가 될 수 있다. 부를 이용해 강자가 되려고 해도 강해지지 않는다. 반드시 강자가 되는 방법을 알아야 강자가 될 수 있다. 강자라고 반드시 모든 적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승리의 방법을 알아야 승자가 될 수 있다. 이겼다고 반드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은 아니다. 제압하기 위해 상대와 어떻게 이득을 나누는지를 알아야 완벽하게 제압을 할 수가 있다.” 모든 일은 그렇게 되는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란 포정(庖丁)이 소를 잡을 때 칼을 다루는 것에는 반드시 남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