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봉의 漢詩 이야기 334

우물 속의 달

달은 하늘에 떠 있어야만 할까? 이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밤하늘에 뜬 달은 맑은 물을 거울삼아 얼굴을 비춰 보곤 하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달이 물속에 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高麗의 시인 李奎報는 이런 너스레의 결정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물 속의 달(山夕詠井中月) 漣漪碧井碧嵓隈(연의벽정벽암외) 잔물결 이는 푸른 암벽 모퉁이 파란 우물속에 新月娟娟正印來(신월연연정인래) 새달이 어여쁘게 바로 비추네 汲去甁中猶半影(급거병중유반영) 물을 길어 가면 물병 속에 반쪽이 담길 테니 恐將金鏡半分廻(공장금경반분회) 금빛 거울을 반으로 나누어 놓고 돌아갈까 두렵네 푸른 암벽 모퉁이에 우물을 파 놓은 걸로 보아 시인이 머무는 곳은 암자일 듯하다. 파란 우물이라고 한 것은 우물물..

인생 후반전

사람이 칠십 년을 사는 것은 옛날부터도 드물다(까)고 읊은 두보(杜甫)의 말이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바야흐로 백세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요즘 사람들의 삶은 그 이전의 삶과는 다른 방식의 삶이 요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름의 핵심은 다름 아닌 은퇴 후의 삶을 다루는 방식일 것이다. 朝鮮의 시인鄭種은 일찌감치 은퇴 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파하였다. 인생 후반전(退休吾老齋) 世間從富不從貧(세간종부불종빈) 세상 사람들 부귀는 좇고 가난은 좇지 않네 藏踪幽谷耳聾人(장종유곡이롱인) 깊은 골짝에 발자국 숨기니 아무 말도 들리지 않네 猶有乾坤無厚薄(유유건곤무후박) 하늘과 땅은 있어도, 후함과 박함은 없으니 數椽茅屋亦靑春(수연모옥역청춘) 서까래 몇 가닥 띠 집 삶도 또한 푸른 봄이네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한..

세한

참으로 무정한 것이 세월이다. 세상에 역병이 돌아 난리가 나서, 모든 것이 멈추었건만 세월만은 막무가내로 멈추지 않고 내달리더니, 기어코 멈춘 사람들을 또 세모(歲暮)에 데려다 놓았다. 이 즈음이 되면 꽃은 물론이고 이파리마저도 모두 사라져 세상은 무채색의 쓸쓸함으로 뒤덮이곤 한다. 그런데 이 시절에 유독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니 소나무가 그것이다. 송(宋)의 시인 소옹(邵雍)은 날이 추워지고 나서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에 대한 예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한(歲寒) 松柏立冬靑(송백입동청) 소나무와 측백나무는 입동 날에 푸르게 되니 方能見歲寒(방능견세한) 바야흐로 한겨울에도 볼 수 있네 聲順風裏聽(성순풍리청) 소리는 바람 속을 좇아 들리고 色更雪中看(색경설중간) 빛깔은 눈 속을 지나 보이네 虎..

삼각산 겨울 산사

삼각산은 白雲臺와 仁壽峰, 萬景臺의 세 봉우리가 삼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요즘은 보통 북한산으로 불린다. 조선의 한양과 지금의 서울을 상징하는 산으로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일품인 국보급 산이다. 이 산을 오른 시인 묵객들이 많은 글을 남기고 있는데, 겨울 풍광을 읊은 것은 흔치 않다. 겨울에 눈이 많고 산세가 험하여 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朝鮮의 시인 鄭澈은 한겨울에 눈 쌓인 삼각산 봉우리를 넘어 산사에 이른 적이 있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삼각산 감실에 부쳐(題三角山龕) 寺在三峰外(사재삼봉외) 산사는 세 봉우리 밖 懸崖第幾層(현애제기층) 낭떠러지 몇째 층에 있던가? 山中正積雪(산중정적설) 산 가운데라 때마침 눈이 내려 쌓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