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만물상] '3만달러'라는데…

bindol 2019. 3. 6. 06:19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자 우리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신했다. 그는 "그에 걸맞은 국가 운영을 하겠다"고 했다.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자본시장을 대폭 개방했다. 이어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가입을 서둘렀다. 그 요건 중 '국민소득 1만달러'를 지키는 일이 급했다. 정부는 원·달러 환율을 760원대까지 떨어뜨리는 저환율 정책을 무릅썼다. 원화는 지나치게 고평가됐고,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외환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

▶그 뒤 정부들도 국민소득 지표를 정권의 핵심 목표로 삼았다. MB 정부는 7% 성장, 1인당 소득 4만달러, G7 진입이라는 '747 공약'을, 박근혜 정부는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 소득 4만달러를 뜻하는 '474 정책'을 내세웠다. 문 정부도 "포용적 성장 모델로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만물상] '3만달러'라는데…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349달러를 기록했다고 어제 한국은행이 발표했다. 2만달러에서 3만달러까지 12년 걸렸다. 같은 구간에서 일본·독일은 5년, 미국은 9년 걸렸다. 우리가 더딘 셈이지만 한국은 이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30-50 클럽'의 일곱째 나라가 됐다. 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나라들이다. 그런데 왜 우리의 '3만달러 시대'는 실감이 안 나는 걸까?

▶숫자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국민소득'에는 가계뿐 아니라 기업과 정부의 소득도 포함돼 있다. 이걸 인구로 나눈 값이 1인당 국민소득이다. 우리가 가정(家庭)에서 체감하는 1인당 국민소득을 따지려면 기업·정부 몫을 뺀 '1인당 가계 총처분 가능 소득(PGDI)'을 들여다봐야 한다. 2017년 PGDI는 1만6573달러였다. 지금 '3만달러 시대'라고 하지만 4인 가구 소득은 12만달러가 아니라 6만6000달러쯤인 셈이다. 이것도 산술 평균이기에 중하위층의 실제 소득은 더 낮을 수 있다. 그래도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 '겉보기 국민 소득'은 껑충 더 뛸 수도 있다.

▶같은 '3만달러'라고 하는데 유럽 선진국과 우리는 삶의 질에서 왜 차이가 날까? 국민소득은 축적된 자산 규모가 아니라 현재의 소득 수준, 즉 현금 흐름을 보여줄 뿐이다. 저들이 조상에게 물려받은 게 많은 상속형 부자라면 우리는 자수성가형 월급쟁이에 가깝다. 돈 펑펑 쓰다 실직하면 일순간 알거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5/20190305031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