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전문기자 칼럼] 정권 선전에 들러리 세운 3·1운동 100주년

bindol 2019. 3. 6. 06:22

3·1운동 사망자 7500명"이라며 정부 최신 통계도 눈감은 대통령
국민이 기념할 3·1운동 100년… '촛불'로 편 갈라 지지자 이벤트로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들으며 조광 국사편찬위원장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대통령은 모두(冒頭)에 "한반도 인구 10%나 되는 202만명이 만세 시위에 참여했고 7500명이 살해됐다"고 했다. 불과 열흘 전 발표한 국사편찬위원회(국편)의 공식 통계와 차이가 너무 컸다. 시위 참가자는 2배, 희생자는 8배 많은 숫자였다. 국편은 3·1운동 참여자와 사망자를 각각 최대 103만명과 900여 명이라고 밝혔었다. 대통령 연설대로라면 사건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해야 할 시기에 국편이 3·1운동 규모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된 걸까.

3·1운동에 대해선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세 시위가 몇 번이나 벌어졌는지, 몇 명이나 참여했는지, 일제 총검에 학살당한 희생자는 몇 명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중·고교 교과서는 일본군(軍) 자료에 의존해 시위 참가자 50만명, 848건으로 써왔다. 일제는 물론 식민 통치에 저항한 3·1운동을 축소 보고했을 것이다. 국편은 2016년부터 3·1운동의 기초 자료를 종합한 데이터베이스를 준비해왔다. 일제(日帝) 보고서와 판결문·신문조서는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간행한 '한일관계사료집', 외국인 선교사 보고서 등 8915건을 종합했다. 이렇게 3년간 작업한 통계가 참가자 최대 103만명, 사망자 900여 명이다. 조광 국편위원장은 "3·1운동 DB는 그동안 국편이 축적한 역사 자료 정보화의 경험과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이며, 많은 역사 연구자가 사명감을 갖고 협력하여 만든 고도의 연구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교육부 산하 '대한민국 정통 역사기관'이 내놓은 공식 통계를 무시하고 100년 전 숫자를 인용한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숫자는 1920년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나온다. 박은식은 망명지 상하이에서 천신만고 끝에 고국에서 보내오는 만세 시위 정보를 입수해 피로 쓴 '혈사(血史)'를 출간했다. 하지만 고국에서 벌어지는 만세 시위와 일제 탄압상을 요즘 통계내듯 맞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이 언급하는 숫자는 신중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말에 무게가 실린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 효과가 90%'처럼 대통령이 근거가 의심스럽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를 얘기해 비판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역사까지 입맛에 맞게 숫자를 골라 쓰는가.

이 정부의 3·1운동관(觀)도 수상쩍다. 작년 9월 남북이 3·1운동 100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겠다며 정상회담 합의문까지 발표한 게 그렇다. 북은 오래전부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3·1운동을 주도했다거나 '탁월한 수령의 지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만세 시위가 실패했다'며 김일성 일가 우상화에 이용해왔다. 이런 북과 3·1운동 100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무지에서 나왔거나 위선적이다. 북은 결국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를 내팽개쳤다. 정상회담 합의문은 반년도 안 돼 휴지 조각이 됐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은 3·1운동 100주년을 지지 세력을 위한 이벤트처럼 생각한다. '촛불 혁명은 3·1운동의 정신을 이은 명예로운 시민혁명'이라거나 '3·1운동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벌인 촛불 혁명'이라며 '촛불'을 끌어다대기 바쁘다. 100년 전 신분, 직업, 성별을 뛰어넘어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독립 만세를 외친 이 위대한 사건을 정치적 편 가르기로 협소하게 만들어 버렸다. 5년 임기 정부가 100년 만에 맞은 3·1운동까지 정권 선전에 들러리 세우는 건 지나쳤다. 재작년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지금 이 정부 편인지도 의심스럽다. 여론에 귀닫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정부가 '촛불'을 독점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런데 일부 지식인까지 '3·1운동이 촛불 혁명의 원조'라며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자며 거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5/20190305031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