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김창균 칼럼] 트럼프 변심에 '희망 고문' 당하는 文정부

bindol 2019. 3. 28. 05:01

트럼프가 정통 노선 이탈하며 '2개 미국'이 다퉜던 對北정책, 하노이 결렬 통해 하나로 뭉쳐
트럼프 찬양하며 한편 섰던 文, 미국 단일 노선에 가로막힌 채 再변심 해주길 매달리는 처지

김창균 논설주간
김창균 논설주간


작년 말 한·미 갈등이 심각하다는 보도가 쏟아졌을 때 청와대 대변인은 "한·미 공조는 최상의 상태니, 걱정 내려놓으라"고 했다. 한·미 갈등을 걱정하는 언론도, 한·미 공조에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 반박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대북 정책 분야에 '2개의 미국'이 있었고, 언론과 청와대는 각각 다른 미국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던 '미국 A'는 의회, 북핵 전문가, 언론, 그리고 국무부 실무 관료였다. 청와대와 협조한다는 '미국 B'는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 최측근이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미국 A'를 미국의 역할과 동맹 수호를 중시하는 '본류 미국'이라고 불렀다. '본류 미국'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불신하면서 트럼프의 대북 협상 방식을 못 미더워했다.


트럼프의 대북 정책도 취임 초에는 '본류 미국'이었다. 입장이 변한 계기는 작년 3월 8일 정의용 국가 안보실장이 전한 김정은의 미·북 정상회담 제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 실장 면담에 배석했던 참모들과 협의도 없이 회담 수락을 밝혔다. 트럼프의 일탈(逸脫)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북핵 전문가들은 "정 실장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부풀려(oversell) 전한 탓"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본류 미국'에서 떨어져 나온 트럼프를 적극 지지하고 찬양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4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자신의 노벨 평화상 수상이 거론되자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으셔야 하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했다. 이 발언은 즉시 태평양을 건너 워싱턴에 전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백악관 출입 기자의 질문에 "그런 말들이 나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 대통령의 '트럼프 찬가'가 정점을 찍은 것은 작년 5월 22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님의 강력한 비전과 리더십 덕분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세계 평화라는 꿈에 성큼 다가섰습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님이기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했다. 미국의 온라인 매체 쿼츠(quarts)는 "문재인 대통령은 아부(flattery)로 트럼프를 조종한다"는 기사 제목 아래 이 장면을 전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합의 없이 결렬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류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이런 입장 전환은 미국에서 여야를 떠나 환영을 받았지만, 문재인 정부에는 충격적인 비보(悲報)였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전화를 걸어온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는 문 대통령 사진이 신문에 실렸는데 표정에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다. "완전한 비핵화 전에 제재 완화는 없다"는 입장으로 미국이 다시 하나가 되면서 한·미 간 견해차가 없다는 청와대 변명도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

지난 2월 말 갤럽의 문재인 정부 정책 평가에서 경제정책과 고용·노동정책은 "잘못한다"가 각각 61%, 59%로 "잘한다" 23%, 26%의 두 배를 훨씬 웃돌었다. "잘한다" 평가가 각각 59%, 52%인 대북, 외교 정책이 국정 지지율을 간신히 떠받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만일 정통 외교·안보 노선으로 돌아간 트럼프 대통령이 끝내 대북 제재의 숨통을 틔워주지 않으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갈 곳을 잃게 되고, 문재인 정부는 국정 전체가 파탄 상황을 맞게 된다.

지난 주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 철회를 지시했다는 트위터를 날리자 청와대는 "다시 희망의 불빛이 비치기 시작했다"는 반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본류 미국' 노선을 벗어나서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응원한다는 말을 해주지 않을까, 남북만 잘되면 민생은 깽판 쳐도 되는데…." 이런 생각이 순간 머리를 맴돌았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인데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도록 언뜻언뜻 가능성을 보여 줘서 매달리게 만드는 걸 희망고문이 라고 한다는데,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을 적대시하는 '아들 부시' 대통령의 강경 우파 노선에 맞서며 드잡이 직전까지 갔는데, 그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우파 내에서도 얼치기 취급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을 찬양하며 공조를 펴다가 그의 변심으로 뒤통수를 맞고 희망고문까지 당하고 있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헷갈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7/20190327039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