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김진국 칼럼] 복수혈전만 꿈꾸는가

bindol 2019. 11. 5. 05:10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임기 절반에 지지율이 반 토막 났다. 10일이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반환점이다. 산술적으로야 절반이지 하산을 시작한 지는 한참 됐다. 당선 직후에는 서슬이 퍼렇게 힘이 실린다. 임기 후반 차기 후보들이 나서면 스포트라이트가 옮겨간다. 지지율까지 곤두박질치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미 여러 대통령의 레임덕을 보았다.
 

탄핵 문제 둘러싼 보수의 분열
쪼개진 광화문 집회는 그 흔적
이런 상태론 내년 총선 참패
연동형 협상해 싹쓸이 피해야

이런 조건에서도 자유한국당은 왜 존재감이 없을까. 10월 3일 광화문 집회도 주도하지 못했다. 그저 군중의 흐름을 쫓아다녔다. 그런데도 표창장을 주고받는 코미디로 조롱거리가 됐다. 인재 영입에 나섰지만, 신선한 방향 제시는 없이 논란만 일으켰다.
 
한국당의 고민은 광화문 집회에 그대로 나타났다. 분열이다. 시민은 하나였지만, 무대는 쪼개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다. 어물쩍 한국당 우산 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건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꿈일 뿐이다.  
 
우리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친박세력은 황 대표마저 타도 대상이다. 유승민 의원의 바른당 세력은 명분을 못 찾고 있다. 어느 한쪽을 끌어안는 순간 다른 쪽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보수진영의 가장 큰 걱정이다.  
 
박 전 대통령이 병원에 있다. 반쯤 바깥에 발을 디뎠다. 선거가 다가오면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풀어주지 않겠느냐는 음모론이 돌아다닌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보수건 진보건 표를 쪼개면 망한다.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을 뽑는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조그만 바람에도 승패가 완전히 뒤집힌다. 20대 총선에서도 1% 미만의 초박빙 선거구가 13군데나 됐다. 특히 수도권은 몇십, 몇백 표만 갈라가도 당락이 바뀐다. 인천 부평 갑은 불과 26표 차였다. 서울은 특정 정당의 싹쓸이가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보수 진영의 희망은 단합이지만 현재로선 무망하다. 박 전 대통령의 결심이 굳어 보인다. 친박연대를 만들 때와 비교가 안 된다. 이명박-박근혜 대립은 보수 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절실하다. 탄핵에 대한 억울함, 복수극, 명예회복…. 말로 풀기 어려운 상태다. 더군다나 박 전 대통령에게는 선친을 잃은 이후의 트라우마까지 드리워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외부 접촉을 끊고 있다. 유영하 변호사 외에는 면회를 사절한다. 오로지 유 변호사를 통해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 유 변호사는 지난 2월 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황 대표의 면회를 거절했다며 ‘수인번호’와 ‘책걸상 반입’ 문제까지 꺼냈다. 박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심각해진다.
 
‘폐족’(廢族)을 선언했던 친노 세력은 다시 집권했다. 박 전 대통령도 ‘친박연대’로 한나라당을 재장악한 경험이 있다. 같은 방법으로 명예회복을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막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보수 세력은 하나로 뭉쳐주기를 바라지만, 박 전 대통령이 인간적 수모까지 모두 털어버릴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선거가 ‘복수혈전’(復讐血戰)이 되어야 하나. 정치인 본인은 그것이 명예회복이고, 받은 대로 되돌려 준다고 하겠지만, 유권자에게는 악몽이다. 지난 2년 반이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피의 보복이었다면, 이제 또다시 새로운 적폐를 찾아 복수혈전을 벌일 건가. 임기 내내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이쪽을 치고, 교대해 저쪽을 치고…. 나라 꼴이 어떻게 되겠나.  
     
돌아보면 광화문 민심은 한국당 지지도, 박근혜 지지도 아니다. 무리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한 의문 제기이고, 좌우를 막론한 기득권의 오만에 대한 항의였다. 지난 2년 반 국정의 실패에 대한 문책이지 그 대안으로 한국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한국당은 한국당 대로, 우리공화당은 공화당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시민들은 울타리 없이 돌아다녔지만, 무대는 달랐다.
 
그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까.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총선을 치른다면 어떻게 될까. 총선은 불과 내년 4월 15일이다. 163일 남았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다. 부산·경남도 그랬다.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고 하지만 보수가 쪼개진 채 선거를 하면 결과를 알 수 없다.
 
선거법 개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득표한 만큼 의석을 나눠주자는 것이다. 26표, 심지어 한 표 차이로 당락이 갈라지는 일이 사라진다. 지난 서울시 의원 선거에서 정당득표율 51%를 얻은 민주당이 의석은 93%를 가져갔다. 이런 싹쓸이를 막고 유권자 뜻대로 의석수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보수 통합과 복수혈전을 고대하는가. 당이 망하건 말건 내 지역구를 지켜야겠다는 건가. 복수혈전은 허망한 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게 현실이다. 차라리 쪼개져도 지지율대로 의석을 확보하고, 대선에서 단일화를 모색하는 게 더 현명하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출처: 중앙일보] [김진국 칼럼] 복수혈전만 꿈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