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하나 미끄럼 탄다. 방금 차 앞유리에 몸을 날렸다. 날씨 탓인지 샛노랗게 익지 못하고 좀 누렇다. 그래도 때는 귀신같이 안다. 처음이자 마지막 놀이. 은행잎이 누레지든 단풍잎이 빨개지든 자연의 조화(造化)렷다. 하마터면 '누래' '빨게'로 쓸 뻔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건 무슨 조화일꼬? 모음조화(調和). 'ㅏ' 'ㅗ' 따위 양성(陽性)은 양성모음끼리, 'ㅓ' 'ㅜ' 따위 음성(陰性)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이다. '노렇다' 아닌 '노랗다', '누랗다' 아닌 '누렇다'부터가 그렇다. 어미도 당연히 '아' '어'로 다르게 붙는다. 해서, 일교차가 크면 은행잎이 노래(←노라+아←노랗+아)지고, 작으면 누레(누러+어←누렇+어)지기 십상이란다. 하늘이 '퍼레서'(퍼래서 X), 구름이 '하얘서'(하예서 X) 좋은 까닭이다. '고마워'는 그럼 무슨 조화인가. 본래 '고맙+아→고마오+아→고마와'였다. 이걸 1988년 한글맞춤법을 개정하면서 '곱다, 돕다'를 뺀 ㅂ불규칙 용언은 어간 끝음절이 'ㅏ, ㅗ'여도 어미 활용형을 '워'(반가워, 아름다워…)로 적기로 한 것이다. 별난 모음조화가 또 있다. 어간 끝음절이 'ㅡ'일 때는 그 앞 음절이 'ㅏ, ㅗ'냐 아니냐에 따라 어미가 '아' '어'로 갈리는 일이다. '빠르다/빨라, 고르다/골라, 누르다/눌러'를 보면 알 수 있다. 〈어간 끝음절 모음이 'ㅏ ㅑ ㅗ'일 때는 '아' 계열 어미가 결합하고 'ㅐ ㅓ ㅔ ㅕ ㅚ ㅜ ㅟ ㅡ ㅢ ㅣ' 등일 때는 '어' 계열 어미가 결합한다〉는 맞춤법 해설은 그래서 보완해야 할 듯싶다. 그렇다면 ' 본뜨다'는? 흔히들 '본따'로 쓰는데, '본떠'가 맞는다. 명사 '본(本)'과 동사 '뜨다'의 합성어로, '본을 뜨다'를 줄이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본을 뜨+어→본을 떠→본떠)으로 여겨진다. 어영부영 또 놓칠라. 계절 한 자락이나마 맛보고자 길을 나섰다. 방음벽 기어오르느라 벌게진 담쟁이. 이것들 곧 시들까 부질없이 속 타는데…. 가을이 무심히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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