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도광양회’ 몸 낮추던 중국 외교, 왜 늑대처럼 사나워졌나

bindol 2020. 5. 27. 10:47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 문제로 궁지에 몰린 중국이 전례 없이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외교활동으로 전 세계와 충돌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년, 1978~2007년 집권) 시절부터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앞세워 몸을 낮추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려왔던 것에서 180도 돌아섰다.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며 힘을 과시한다.

고자세에 독설, 경제 보복 예사로
홍콩 탄압, 대만·남중국해엔 항모
장기적 국제 고립과 탈중국화 불러

2013년 집권한 시 주석은 ‘제 할 일은 주동적으로 한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를 거쳐 코로나19 사태를 전후해 무력과 독설, 보복을 앞세운 ‘전랑(戰狼) 외교’로 돌아섰다. 전랑은 인민해방군 홍보를 위해 만든 애국주의 액션 영화다. 주인공은 2015년 개봉한 1편에선 미국 네이비실 출신의 악당들을, 2017년의 2편에선 유엔도 포기하고 미군도 철수한 아프리카에서 납치범들을 각각 물리친다. 영화에서 중국은 의지와 용기, 첨단무기로 세계를 구하는 ‘21세기 카우보이’로 표현된다. 전랑은 영어로 ‘울프 워리어(Wolf Warrior)’로 적는데 ‘늑대 전사’로 옮길 수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 15일 “과거 보수적·수동적·저자세 외교를 추구하던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단호·주도적·고자세의 전랑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디플로맷은 전랑 외교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영화처럼 중국 대중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국가적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4일 홍콩 경찰이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 현장에서 연행한 참가자를 길바닥에 눕혀 놓고 체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9일 “중국 외교관들은 싸울 준비가 돼 있으며 국제 영향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공격적으로 행동한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중국의 무역흑자 문제를 지적하는 기자에게 중국 외교관이 “그게 불만이면 중국산 마스크와 보호장비부터 벗어라”라고 쏘아붙였을 정도다.

BBC방송은 13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내놓고 험한 말을 하는 중국 외교관들이 중국의 ‘새로운 군대’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저서 『디플로머시(Diplomacy)』에서 “지나치게 언행이 신중해 이를 해석할 중국 전문가가 필요했을 정도”라고 평가했던 과거의 중국 외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중국 외교가 갈수록 호전적 태도를 보이면서 곳곳에서 마찰을 일으키고, 특히 미국과 불화가 쌓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랑 외교의 고삐를 바짝 당긴 결과, 중국은 국제사회와는 물론 중화권과도 갈등하고 있다.

중국이 홍콩 입법회(의회)를 거치지 않고 베이징의 전국인민대표회의(全人代)에서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홍콩의 반정부 활동을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 한 사례다. 홍콩 헌법 격인 기본법에 ‘법률 제정권이 홍콩 입법회에 있다’고 규정한 것과 어긋난다. SCMP 등이 21일 이를 보도하자 홍콩인들은 대대적인 시위로 맞섰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인민해방군 해군 함대를 사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은 대만에도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강요하면서 지난해 1월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대만인들은 지난 1월 11일 총통 선거와 입법원 선거에서 친중 성향의 국민당 대신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차이잉원(蔡英文) 총통과 민진당에 표를 몰아줬다. 중국은 지난 4월 대만해협에서 항공모함인 랴오닝(遼寧)함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대만을 압박했다. 중국은 18~19일의 세계보건기구(WHO) 의사결정기구인 세계보건총회(WHA)에 대만의 옵서버 참가를 막았다. 지난 20일 2기 취임식에서 차이 총통은 중국의 일국양제 통일 방안을 거부한 것은 물론 미국·유럽연합(EU)·일본과 관계를 강화해 중국 의존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신대만 국책싱크탱크(新台灣國策智庫)의 5월 7일 조사 결과 74.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중국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와중인 4월 18일 하이난(海南) 성 싼사(三沙)시에 시사(西沙)구와 난사(南沙)구를 각각 설치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섬과 산호초 등을 편입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동남아 국가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2호 항모인 산둥(山東)함의 취역식을 지난해 12월 17일 남중국해 입구인 하이난 성 싼야(三亞)에서 시 주석이 참가한 가운데 열었다. 2016년 7월 12일 헤이그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중국의 남중국해 권리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고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했던 판결에 항모로 답한 셈이다.

중국은 자국과 사이가 틀어진 특정 국가의 핵심 수출품을 거부하는 국제무역 규범 파괴도 서슴지 않는다. 호주가 코로나19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주장하자 12일 쇠고기 수입을 막았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 편집인은 9일 “중국은 단기간 안에 핵탄두 보유 수를 1000개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국은 코로나19 상황에서 글로벌 평화를 추구하기는커녕 힘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해 세력 확대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전랑 외교는 중국 내부에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자극해 시 주석과 공산당의 권위를 높이겠지만, 국제사회는 중국이 전 세계와 마찰하는 ‘대갈등 시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면 ‘세계의 공장’이던 중국의 위상도 타격을 받게 된다. 글로벌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경제적 자립주의·국수주의가 국제적 규범으로 자리 잡을 경우 결정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전랑 외교는 단기적으로는 중국 권력에 이득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세계에 모두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출처: 중앙일보] ‘도광양회’ 몸 낮추던 중국 외교, 왜 늑대처럼 사나워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