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재심

bindol 2020. 5. 27. 10:39

박진석 사회에디터

재심(再審)은 확정된 형을 뒤집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절차다. 말 그대로 형이 확정된 원래 재판에서의 잘못이 발견돼 새로 재판하는 것을 말한다. 증거물 위·변조나 허위의 증언·감정·통번역, 무고(誣告) 사실이 입증되거나 새 증거가 발견되는 등의 경우 재심 청구를 할 수 있다.

재심은 대부분 옛 공안 사건들에 쏠려있다. 민주화 이후 진상조사를 통해 조작의 증거들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재심처럼 범위가 차츰 확대되는 듯한 경향도 나타난다.

하지만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재심 사례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여당에서 재조사와 재심 가능성을 거론하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사건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아 판결문을 다시 들춰봤다. 13인의 대법관들은 최소한 3억원의 금품수수 사실은 만장일치로 인정했다. 금품공여자인 고 한만호씨가 준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보증금으로 사용됐다는 사실, 2억원 반환 직후 한 전 총리와 한씨가 두 차례 통화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한씨 진술뿐 아니라 강력한 정황 증거를 함께 터 잡아 내린 판단이었다는 얘기다.

‘사법농단 대법원’의 판결이었다는 이유로 ‘음모론’도 제기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앞길’에 대한 고려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최고 법관 13명이 모두 ‘중앙 지침’에 따랐다고 보는 시각을 상식에 부합한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한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11주기’에 봉화마을에서 결백 주장을 했다는 점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이번 논란이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건설’을 핵심으로 하는 ‘노무현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듯 보여서다. 그가 허위로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반칙’이다. 유사 상황의 다른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재조사 역시 ‘특권’이다.

한 전 총리는 적절한 시기에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판결 불복 입장을 고수할 거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재심 청구를 하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혔으면 좋겠다. 총리를 역임하신 분이 거대 여당의 위세를 빌려 떼를 쓰는 것 같은 모습만 노출한다면 보기에 괴로울 것 같아서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재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