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수진 경제기획팀 차장 1933년 7월 25일 백악관에 ‘뉴딜’이 도착했다. 아메리칸 새들브레드 종(種)의 늠름한 말 한 필이었다.(왼쪽 사진) 미주리주(州) 뉴딜 정책 추종자들이 지지를 표하기 위해 보낸 선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흐뭇한 미소로 ‘뉴딜’을 맞았다는 소식은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매체에 비중 있게 보도됐다. 이런 ‘쇼’가 필요했다는 건 그만큼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반대도 많았다는 얘기다. 약 5개월 후인 1934년 1월 4일 자 NYT를 찾아보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를 찾아 반대파에게 “뉴딜은 사라지지 않는다”며 강력 추진 승부수를 던진 내용이 1면 톱기사다. ![]() 노트북을 열며 5/27 그런데, 왜 하필 말이었을까. 뉴딜 정책에 대한 비판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반대파들은 ‘뉴딜은 트로이의 목마’라고 비판했다. 경기 부흥을 위한 포퓰리스트 정책을 통해 민심을 얻고, 사회주의가 스미게 하려는 작전이라 해석하고 배척한 것이다. 반(反) 뉴딜 기조의 매체엔 허름한 목마 그림에 ‘뉴딜 독재’라고 써놓은 만평이 등장했다.(오른쪽 사진) ‘뉴딜’이라는 살아있는 말을 친(親) 뉴딜파가 선물한 데도 이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뉴딜’은 볼품없는 목마 따위가 아니라, 에너지 넘치고 펄떡펄떡 숨 쉬는 말이라는 항변이라는 뜻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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