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聞column

[마음 읽기] 빈약한 예측력과 과도한 설명력

bindol 2020. 6. 3. 06:13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가상의 연구실 장면, 하나

예측의 가치, 틀릴 수 있음에 있어
안전한 예측엔 사유 따르지 않아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용기 필요

상위 계층 사람들과 하위 계층 사람 중, 코로나 사태로 행복감이 더 감소한 쪽은 어디일까?

“하위 계층의 행복감이 더 하락했다”고 초기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연구원의 얼굴이나 그 발표를 듣는 다른 연구진들의 표정에서 놀람이나 당혹스러움의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 수입 감소, 실직에 대한 두려움, 안전망 부족 등 머리에 당장 떠오르는 요인 몇 개만 생각해도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며칠 후, 분석의 오류를 발견한 연구원이 결과를 다시 발표한다. “처음에 발표한 것과는 반대로 상위 계층의 행복감이 하위 계층의 행복감보다 감소 폭이 크게 나타났어요.” 분석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데이터 입력에 오류는 없었는지 확인해보라는 연구원들의 조언이 이어진다. 장내의 술렁거림도 잠시, 교수가 상황을 정리한다. “행복을 위한 여가 활동은 애초부터 상위 계층의 몫이지. 여가 활동이 대폭 위축된 상황에서 상위 계층의 행복감이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어. 하위 계층에 그런 여가 활동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어.” 상위 계층의 행복감 하락이 더 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연구진의 의식에서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가상의 연구실 장면, 둘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 중, 코로나 기간중 누가 더 힘들었을까?

내성적인 사람은 평상시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행복의 감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연구진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했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다른 사람을 직접 못 만나는 대신, SNS나 화상 통화 등을 통한 관계 유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므로 그들의 행복감 하락이 더 적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제3의 소수 의견도 존재했다. 행복에 미치는 성격의 힘이 워낙 강고하기 때문에, 코로나 상황에서도 외향적인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의 행복의 차이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초기 분석을 담당한 연구원이 “코로나 기간 동안 행복이 감소하는 데 성격의 차이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분석 결과를 보고했다. 성격과 행복에 관한 기존 연구에 근거해 얼마든지 설명 가능한 결과였다. 연구진은 성격의 위력을 밝힌 기존 연구에 대해 경쟁이나 하듯 언급하기 시작한다.

며칠 후, 초기 분석 결과가 바뀌었다. 외향적인 사람의 행복감 하락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교수의 반응을 신호로 모든 연구원이 외향적인 사람의 행복감이 더 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거론하기 시작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외향적인 사람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연구진의 의식에서 점점 더 명확해진다.

#모든 것 설명하는 능력, 천재성인가 자기기만인가

 


연구진의 속마음이 심란하다. 분석의 실수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대외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실수를 발견한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 그들의 마음이 심란한 건, 어떤 결과가 나와도 거뜬하게 설명해내는 자신들의 모습이 두렵기 때문이다. 결과를 알고 난 후에 설명하지 못하는 게 없다면, 우리는 천재인가 괴물인가? 결과만 알려주면 순식간에 설명을 해내는 우리의 창의성과 순발력에 감탄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자기기만과 지적 허영심에 연민을 느낄 것인가?

요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예측이 풍성하다. 그런데 모두가 큰 그림들이라서 예측이 틀릴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예측해야 예측의 정확성을 따져볼 수 있는데, 두루뭉술하게 예측하니 결코 틀릴 것 같지 않다. 구체적 예측의 가치는 틀릴 수 있음에 있다. 틀려야 더 나은 구체적 예측들이 등장한다. 오류가 사유를 낳는 법, 안전한 예측에는 사유가 뒤따르지 않는다.

예측은 어렵고 설명은 쉽다. 그래서 우리의 예측은 두루뭉술하지만, 우리의 설명은 확신으로 가득하다. 이 둘이 바뀌어야 한다. 예측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설명은 겸손해야 한다. 예측하려는 자는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예측의 가치는 틀리지 않는 것에 있지 않고, 틀림을 통해 사유를 자극하는 것에 있다. 설명의 가치는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는 지적 허영에 있지 않고, 우리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설명하는 과거가 조금 전만 해도 예측이 불가능했던 우리의 미래였음을 인정하는 겸손에 있다.

설명과 예측이 쏟아지는 시기, 진정한 용기와 진정한 겸손을 생각해본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마음 읽기] 빈약한 예측력과 과도한 설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