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대 역사서를 흔히 24사 혹은 25사(중국 역대 왕조들의 정사)라고 하는데 특이하게도 당나라 역사서만 '구당서'와 '신당서' 두 종류다. 당나라 역사는 이미 5대10국 시대인 945년에 편찬됐다. 그런데 송나라가 세워지고 나서 송나라 인종(仁宗)이 다시 고쳐 쓰게 해 1060년에 새로운 당나라 역사서가 나오는데 이를 '신당서'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때 구당서에는 없었던 '간신열전'이라는 항목이 생겨난 것이다. 구양수(歐陽脩) 등이 주도한 '신당서' 간신열전은 이렇게 포문을 열었다. "나무가 썩으려고 할 때에는 벌레가 반드시 생겨나고 나라가 망하려고 할 때에는 요망한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
조선 세종 때 편찬한 '고려사'에 간신열전 항목이 들어간 것도 이 같은 영향을 받은 때문일 것이다. 이 '고려사' 간신열전 첫머리를 장식한 인물은 문공인(文公仁)이다. 그의 특기는 외국의 환심을 사는 것이었다. 요(遼)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 나라 접대원들에게 서화·병풍·부채 등 진귀한 물품을 뇌물로 주어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그 후 이것이 관례가 돼 사신이 갈 때마다 각종 물품을 끊임없이 요구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반역자' 이자겸(李資謙)에게도 미움을 받아 충주로 귀양을 가야 했을까? 이자겸이 패망한 후 다시 조정으로 복귀한 그는 묘청의 난과 관련해 미심쩍은 행동을 보였다. 난의 조짐을 미리 인지한 백수한이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문하평장사로 있던 문공인에게 물었다. 이에 문공인은 "이 일은 의심스러워 진위를 판단하기 어려우니 당분간 묻어두소서"라고 덮어버 렸다. 서경 사람들이 묘청을 죽이고 윤첨(尹瞻)을 보내 투항을 요청하자 원수 김부식 등은 그것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문공인은 오히려 왕을 설득해 윤첨을 가두고 크게 모욕했다. 그 바람에 서경 사람들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해를 넘겨서야 겨우 평정할 수 있었다. '고려사'에서 그를 제1호 간신으로 꼽은 이유는 뭘까? 임금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 죄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