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別曲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99] 광란(狂瀾)

bindol 2020. 8. 2. 05:14

 

"발 바깥에서는 비가 추적추적(簾外雨潺潺)…"으로 시작하는 사(詞)가 있다. 남당(南唐)의 마지막 군주 이욱(李煜·937~978)의 작품이다. 쳐놓은 발 밖으로 들리는 빗소리를 적었다. 우리말 '잔잔하다'의 어원을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잔잔(潺潺)'은 물결이 조용한 모습, 비가 조용하게 내리는 소리 등의 새김이다. 순 우리말이라고 여겨지는 '천천히'도 한자 세계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천천(川川)'이다. 양웅(揚雄·BC53~AD18)의 문장에 등장한다.

"큰 수레가 천천히 나아가네(大車川川)"라는 글귀다. 큰 하천이 유유히 흘러가는 데서 착안한 조어(造語)로 보인다. 이를 주석한 글은 '천천'을 "크고 둔중한 것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모양"이라고 풀었다. 따라서 '잔잔'과 '천천'은 모두 물 흐름과 관련이 있다.

골골(汨汨)이라는 단어 또한 물이 흐를 때 나는 소리를 가리킨다. 순 우리말 '졸졸'이 그에 호응한다. 의태(擬態)도 즐비하다. 큰물이 기운차게 흐르는 모습은 도도(滔滔)다. 호탕(浩蕩)이나 호호탕탕(浩浩蕩蕩)도 그렇다.

그 물의 흐름으로 반드시 생겨나는 것이 물결이다. 파랑(波浪), 파란(波瀾), 파도(波濤), 낭도(浪濤) 등으로 적는다. 걷잡을 수 없이 센 물결은 노도(怒濤), 모든 것을 휩쓸어 갈 정도의 물결은 광란(狂瀾)이다.

물이 급기야 흐르던 곳을 넘어 더 너른 땅을 삼킨 모습도 있다. 앙앙(泱泱)은 본래 수면(水面)이 광대하게 퍼 져 있는 상태를 가리켰다. 왕양(汪洋) 또한 아주 너른 땅이 물에 잠긴 모습이다. 팽배(澎湃)는 거센 물결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다. 언어는 경험의 축적이기도 하다. 잔잔하던 물이 광란으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쓴 큰물 공포가 중국에는 흔해 이렇듯 풍부한 단어가 나온 듯하다. 도시와 전답이 물에 가득 잠긴 요즘 중국 땅 홍수의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깊어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3/20200723044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