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리(李德履·1728~?)가 쓴 '동다기(東茶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차에는 고구사(苦口師)니 만감후(晩甘侯)니 하는 이름이 있다. 또 천하의 단것에 차만 한 것이 없어 감초(甘草)라고도 한다. 차 맛이 쓴 것은 누구나 말한다. 차가 달다는 것은 이를 즐기는 사람의 주장이다." 표현이 재미있어서 찾아보니 각각 출전이 있다.
당나라 때 피광업(皮光業)은 차에 벽(癖)이 있었다. 그가 갓 나온 감귤을 맛보는 자리에 초대받아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잔칫상에 차려 내온 훌륭한 안주와 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차부터 내오라고 야단이었다. 큰 잔에 담아 차를 내오자 그가 시를 지었다. "감심씨(甘心氏)를 아직 못 보았으니, 먼저 고구사(苦口師)를 맞아야겠네(未見甘心氏, 先迎苦口師)." 감귤(柑橘)은 속 알맹이가 달아서 감심씨, 즉 속 맛이 단 사람이라 했다. 차는 첫입에 맛이 쓴지라 입이 쓴 선생이란 뜻으로 고구사라 불렀다. 고구사가 차의 별명으로 된 연유다.
또 당나라 손초(孫樵)는 초형부(焦刑部)에게 차를 보내며 이렇게 썼다. "만감후(晩甘侯) 15인을 계시는 거처로 보내서 모시게 합니다. 이들은 모두 우렛소리를 들으며 따서 물에 절을 올리고 만든 것입니다." 단차(團茶) 15개를 만감후 15인이라 했다. 차를 마시면 단맛이 뒷맛으로 오래 남는다. 그래서 차를 의인화해 '늦게서야 단맛이 나는 제후'라는 의미로 이 표현을 썼다. 이후 만감후도 차의 별칭으로 쓴다. 명나라 때 육수성(陸樹聲)의 '다료기(茶寮記)'에 나온다.
차의 맛은 단가 쓴가? 고구사와 만감후 두 단어에 그 대답이 있다. 정답은 '첫맛은 입에 쓰고 뒷맛은 달다'이다. 고구만감(苦口晩甘)! 처음 혀끝에 어리는 맛은 쓴데 이뿌리에 남는 뒷맛은 달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아 덥석 삼켰다가 쓰면 웩 하고 토한다. 입속의 혀처럼 달게 굴다가 쓰디쓴 뒷맛만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사람도 차 맛과 다를 게 없다. 처음에 조금 맛이 쓴 듯해도 겪고 보면 길게 여운이 남는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