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292] 군이부당 (羣而不黨)

bindol 2020. 8. 2. 07:5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629년 병조판서 이귀(李貴)가 글을 올려 붕당의 폐해를 지적하자 인조가 못마땅해하는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 말미에 적는 대답)을 내렸다. 조익(趙翼·1579~ 1655)이 붓을 들었다. 간추려 읽어본다.

사적으로 아첨하며 영합하는 것을 당(黨)이라 한다. 공자가 군자는 "어울리되 파당을 짓지 않는다(羣而不黨)"고 한 것이 그 예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군자는 서로 도와 몸을 닦고 조정에 서면 세상을 위해 일한다. 소인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 군자의 '붕(朋)'과 소인의 '당(黨)'이 이렇게 나뉜다. 참소하는 자들은 군자를 모함할 때 당을 짓는다고 지목해 임금을 격노케 하여 일망타진의 꾀를 이룬다. 군자의 붕과 소인의 당은 겉으로 보면 다 비슷비슷해 의혹에 빠지기 쉽고 참소가 잘 끼어든다.

임금의 역할은 무엇인가? 어진 임금은 군자의 당을 등용해 치세를 이루고, 용렬한 임금은 군자의 당을 배척해 난세를 맞는다. 순임금은 "신하는 내 이웃이요, 내 이웃은 신하다.(臣哉隣哉 隣哉臣哉)"라고 했고, "신하는 나의 팔과 다리요 눈과 귀다.(臣作朕股肱耳目)"라고 했다. 천하의 치란은 군자와 소인의 진퇴와 소장(消長)에서 나뉜다. 맹자가 말했다. "자만하는 목소리와 낯빛이 사람을 천리 밖에서부터 막는다.(訑訑之聲音顔色, 拒人於千里之外)" 바른 뜻을 지닌 군자가 떠나가게 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다.

오늘날의 당(黨)은 군자와 소인이 섞여 있어 통치자의 판단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서경'에는 "어떤 말이 임금의 마음에 거슬리면 반드시 도리에 비추어 본다.(有言逆于汝心 必求諸道)"고 했다. 신하의 직언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임금의 희로에 따라 자신의 화복이 결정되므로 이해를 돌본다면 굳 센 뜻을 지녔어도 흔들림이 없을 수 없다. 임금이 노여워 듣기 싫어하는 뜻을 보일 때 누가 거슬리는 말을 아뢰어 예측 못 할 재앙을 당하려 하겠는가? 이후로 직언은 사라지고 아첨만 남게 된다. 임금의 한 마디 득실에서 인심의 향배가 결정된다.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이치는 고금이 다를 게 없다. 이를 돌아보지 않아 주변이 혼란스럽고 뒤숭숭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2/09/20141209046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