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육유(陸游)가 자기 서재를 서소(書巢), 즉 책둥지로 불렀다. 어떤 손님이 와서 물었다. "아니 멀쩡한 집에 살면서 둥지라니 웬 말입니까?" 육유가 대답했다. "당신이 내 방에 들어와 보지 못해서 그럴게요. 내 방에는 책이 책궤에 담겼거나 눈앞에 쌓였고 또 책상 위에 가득 얹혀 있어 온통 책뿐이라오. 내가 일상의 기거는 물론 아파 신음하거나 근심·한탄하는 속에서도 책과는 떨어져 본 적이 없소. 손님도 안 오고 처자는 아예 얼씬도 않지. 바깥에서 천둥 번개가 쳐도 모른다네. 간혹 일어나려면 어지러이 쌓인 책이 에워싸고 있어서 움직일 수가 없소. 그러니 서소라 할밖에. 내 직접 보여드리리다." 손님을 끌고 서소로 가니 처음엔 들어갈 수가 없었고, 들어간 뒤에는 나올 수가 없었다. 손님이 껄껄 웃고는 "책둥지가 맞소" 하며 수긍했다. 육유의 '서소기(書巢記)'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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