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문신·문장가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1202년 개성 남쪽의 한갓진 동네로 이사했다. 깊숙이 들어앉은 마을은 맑고 깨끗해 산촌의 풍미가 있었다. 다만 동네 이름이 색동(塞洞)인 것만은 마음에 걸렸다. 색(塞)은 비색(否塞), 즉 꽉 막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동네 이름과 달리 이규보는 이 마을에 이사해 20년을 사는 동안 관운이 순조롭게 풀려 4품관 지위에까지 올랐다. 벼슬아치들이 이웃에 이사 오면서 마을의 분위기도 일신했다. 이규보는 이웃의 권유로 동네 이름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렇게 썼다.
'대저 비(否)가 극도에 이르면 태(泰)가 되고, 색(塞)이 오래되면 통하게 된다. 이는 음양의 변치 않는 이치다. 동네가 장차 열리려 하니 내가 그 이름을 새로 지어 하늘의 뜻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천개동(天開洞)이라 이름 짓는다.'
앞뒤로 꽉 막힌 색동이 하늘이 활짝 열어준 동네 천개동으로 바뀌게 된 연유다. 이규보의 '천개동기(天開洞記)'에 나온다.
이규보의 말은 '주역'의 비괘(否卦)와 태괘(泰卦)에서 나왔다. 비괘는 임금을 상징하는 건(乾)이 위에서 누르고 신하를 뜻하는 곤(坤)이 아래에 놓여 '천지가 교접하지 못해 만물이 형통하지 못하며, 상하가 교접하지 못해 천하에 나라가 없는(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上下不交而天下無邦也)' 상태다. 내유외강(內柔外剛), 즉 속은 물러터졌으면서 겉만 멀쩡한 형상이다. 태괘는 이와 반대로 임금을 상징하는 건(乾)이 아래에 있고, 땅을 나타내는 곤(坤)이 위에 있는 괘상이다. 임금의 도가 바탕에서 시행되고 신하의 도가 위로 상달(上達)되는 태평 시대의 형상이다.
이 비괘와 태괘는 서로 맞물려 있다. 비극태래(否極泰來)! 천지의 기운이 꽉 막혀 쇠퇴하는 비괘의 운세가 극에 달하면 만물이 형통하는 치세(治世)인 태괘의 시대가 온다. 천지불교(天地不交)로 온 국민을 슬픔에 몰아넣고 상하불교(上下不交)의 소통 부재로 안타깝던 한 해가 지나갔다. 새해에는 꽉 막힌 불통과 불신을 버리고 태평의 기상이 누리에 가득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