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봉(李玉峯)은 여류 시인이다. 이웃 아낙이 소도둑으로 몰려 갇힌 남편의 억울함을 탄원하는 글을 써달라며 그녀를 찾아왔다. 옥봉이 전후 사정을 글로 적고 끝에 시 한 구절을 얹었다. "첩의 몸이 직녀가 결코 아니니, 낭군이 어찌 견우시리오.(妾臣非織女, 郎豈是牽牛)" 자기가 예쁜 직녀가 아닌데 남편이 어떻게 견우가 될 수 있느냐는 얘기다. 견우(牽牛)는 뜻으로 풀면 소를 끌고간다는 의미다. 소도둑을 재치 있게 이렇게 풀이했다. 탄원서를 받아본 태수가 무릎을 치며 탄복하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남편을 석방했다. '지봉유설'에 나온다.
홍휘한(洪徽漢·1723~?)은 얼굴이 너무 시커메서 젊어서부터 친구들이 그를 우적(牛賊), 즉 소도둑이라 놀리곤 했다. 사람들이 우적을 아예 호 부르듯 해서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었다. 참판 홍인호(洪仁浩·1753~1799)가 말했다. "우적이란 호는 우아하지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축은(丑隱)으로 고치심이 어떠실는지요?" 우적이야 간데없는 소도둑인데 축은이라 하자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의미로는 소[丑]를 은닉한 사람이니 소도둑이나 매일반이지만 듣기에 따라 소처럼 우직한 은자란 뜻도 되어 한결 맛이 있다. 사람들이 재담이라 여겨 서로 전파해 만년에 홍휘한은 마침내 축은으로 행세했다. 다산의 '혼돈록(餛飩錄)'에 보인다.
연암은 '사소전(士小典)'에서 독특한 뜻매김의 진수를 보여준다. 귀가 먹어 큰 소리로 말하는 귀머거리를 그는 '소곤대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불렀다. 눈이 멀어 실명한 사람은 장님이라 하는 대신 '남의 흠을 보지 않는 이'라고 말했다. 혀가 굳고 목소리가 막혀 말 못하는 사람을 벙어리라 하지 않고 '남 비평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또 등이 굽은 곱사등이는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했다. '우부초서(愚夫艸序)'란 글에 나온다.
같은 말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진다. 복잡한 세상살이에 쌓인 게 많아선지 오가는 말이 앙칼지고 날이 섰다. 온유돈후(溫柔敦厚)의 맛이 전혀 없다. 격한 감정을 실어 분을 푸는 것이 잠깐은 통쾌하겠지만 결국은 긴 근심의 출발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