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보'를 읽는데 글 속의 '잠시광경(暫時光景)'이란 말이 나를 툭 건드린다. 잠시광경이라, 이 말 때문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 세상만사가 다 잠시광경에 지나지 않는다. 변치 않을 것 같았던 사랑도 용서할 수 없는 미움도 눈앞을 스쳐 가면 잠시광경일 뿐이다.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연암 박지원의 친필 서간첩은 안의와 면천 현감 시절에 집으로 보낸 편지들을 묶은 것이다. 읽을 때마다 그가 붙든 잠시광경 너머로 그가 보인다. 그중 한 대목은 이렇다. "집을 수리할 때 벽 사이에 새로 '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진다(고숙체락·苽熟蒂落)'는 네 글자를 크게 써 붙여놓았더니, 감사(監司)와 다른 수령들이 모두 비록 벽 사이에 써 붙이기는 했지만 꼭지 빠진 자리는 없는 것 같으니 무엇을 말한 것이냐고들 하여 집이 떠나가도록 크게 웃었다. 누가 이것을 써 놓을 줄 알았겠느냐? 초엿새 아침의 일이다." 과만(瓜滿), 즉 임기가 꽉 차 떠날 때가 되었음을 네 글자로 암시하자 이를 보고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활짝 웃던 광경을 이렇게 멈춰 세웠다.
"지난번 보내온 나빙(羅聘·청나라 화가·1733~1799)의 대나무 그림 족자는 솜씨가 기이하더구나. 온종일 강물 소리가 울부짖어서 마치 몸이 배 가운데 앉은 것처럼 흔들흔들하였다. 대개 고요하고 적막하기 짝이 없어 강물 소리가 그렇게 들렸던 게지. 문을 닫아걸고 숨을 죽이며 이 두루마리를 때때로 펼쳐 감상하지 않았더라면 무엇으로 이 마음을 위로했겠느냐? 날마다 열 몇 번씩은 말았다 폈다 하니 작문의 요령을 익히는 데 크게 유익함이 있다."
무료한 장마철이었던 모양이다. 박제가에게서 어렵게 빌려온 나빙의 대나무 그림을 펼 쳐놓고 닫힌 방 안에서 불어난 강물 소리를 듣던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이걸 보다가 작문의 요령을 익혔다니 이 선문답도 풀어야 할 숙제다.
잠시 머물다 간 광경이 기억이 된다. 잠시의 광경도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 득실이 갈린다. 미움과 증오를 털어내고 미쁜 기억만 담기에도 삶은 늘 벅차다. 인생이 잠시광경의 사이를 스치며 지나간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