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5년 7월, 월출산 자락 영암 구림 땅에 유배된 김수항(金壽恒·1629~ 1689)은 '화도시(和陶詩)' 연작 50수를 지으며 안타까운 시간을 추슬렀다. 처음 공주를 지날 때만 해도 "어이 그릇 육신의 부림을 받아, 괴로이 티끌 그물 걸려들었나. 그래서 세상 이치 통달한 이는, 처세에 이름 없음 높이 보았지(胡爲誤形役, 苦被塵網縈. 所以曠達人, 處世貴無名)" 하며 나락에 떨어진 처지를 한탄했다.
겨울 들어 마음이 안정되자 시상도 차분해졌다. '동운(同雲)' 4장을 지었다. 동운은 폭설이 내리기 전 하늘에 자욱하게 낀 먹구름이다. 제4장만 읽어 본다. "회오리바람 세차, 잎은 가지 떠나간다. 뿌리에 감춰 지녀, 내 화창한 봄 피워내리. 잃어도 줄지 않고, 얻은들 늘지 않네. 자리 지켜 행하니, 나를 어이하겠는가?(飄風發發, 有蘀辭柯. 晦之在根, 葆我春和. 喪不爲少, 得不爲多. 素位而行, 其如余何)"
매서운 북풍한설에 무성하던 잎이 다 떨어졌다. 이제 내 곁엔 아무도 없다. 빈 가지로 섰다. 하지만 꺾이지 않는다. 모진 추위의 끝에서 봄은 다시 올 것이다. 그때 봄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이 간난의 때를 의연히 견디겠다. 얻고 잃음에 대한 세상의 셈법은 이제 지겹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내 자리에 뿌리박고 서서 내 길을 갈 뿐이다. 눈보라도 고통의 시간도 하나 두렵지 않다. 내가 나 자신 앞에 부끄러운 것만은 참을 수가 없다.
제3구는 출전이 있다. 송나라 때 학자 유자휘(劉子翬)가 '자주희축사(字朱熹祝詞)'에서 썼다. "나무는 뿌리에 간직해서 봄에 무성히 피어나고, 사람은 몸에 간직하여 정신이 그 안에서 살찐다(木晦於根, 春容燁敷. 人晦於身, 神明內腴)." 마지막 두 구절은 '중용'에서 끌어 썼다. "군자는 제자리를 지켜 행할 뿐 그 바깥은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환난에 처한 군자의 마음가짐을 잘 표현했다. 사람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그 그릇이 온전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