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361] 무구지보(無口之輔)

bindol 2020. 8. 3. 07:49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옛사람은 자기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박물관 구석에 놓인 거무튀튀한 구리 거울은 아무리 광이 나게 닦아도 선명한 모습을 보여줄 것 같지 않다. 지금이야 도처에 거울이라 거울 귀한 줄을 모른다.

연암 박지원은 자기 형님이 세상을 뜨자 이런 시를 남겼다. "형님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고. 아버님 생각날 땐 우리 형님 보았었네. 오늘 형님 그리워도 어데서 본단 말가. 의관을 갖춰 입고 시냇가로 간다네.(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세상을 뜬 형님이 보고 싶어 의관을 갖춰 입고 냇가로 가는 뜻은 내 모습 속에 형님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물가에 서서 수면 위를 굽어본다. 거기에 돌아가신 형님이 서 계시다.

성호 이익 선생은 '경명(鏡銘)'에서 이렇게 썼다. "얼굴에 때 묻어도, 사람은 혹 말 안 하지. 그래서 거울은 말없이, 모습 비춰 허물을 보여준다네. 입 없는 보좌관과 한 가지거니, 입 있는 사람보다 한결 낫구나. 마음 두어 살핌이, 무심히 다 드러냄만 어이 같으리. (面有汙, 人或不告. 以故鏡不言, 寫影以示咎. 無口之輔, 勝似有口. 有心之察, 豈若無心之皆露.)"

내가 잘못해도 옆에서 잘 지적하지 못한다. 가까우면 가까워 말 못 하고, 어려우면 어려워 입을 다문다. 잘못은 바로잡히지 않은 채 몸집을 불리다가 뒤늦게 아차 싶었을 땐 이미 늦어 소용이 없다. 얼굴에 묻은 때처럼 알기 쉬운 것이 없지만 남들이 얘기를 안 해주면 나는 잘 모른다. 곁에 거울이 있으면 굳이 남의 눈에 기댈 일이 없다. 내가 내 모습을 직접 비춰 보고 수시로 점검하면 된다. 그래서 성호는 거울을 무구지보(無口之輔), 즉 입 없는 보좌관이라고 명 명했다.

얼굴에 묻은 때는 거울로 확인이 가능하지만 마음에 앉은 허물은 어떤 거울에 비춰야 하나? 종이 거울, 즉 책에 비춰 살피면 된다. 주나라 무왕(武王)은 '경명(鏡銘)'에서 "거울에 비추어 모습을 보고, 사람에 비추어 길흉을 아네.(以鏡自照, 見形容. 以人自照, 知吉凶.)"라 했다. 이것은 또 사람 거울 이야기다. 어느 거울에든 자주 비춰 밝게 보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12/20160412034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