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정유일(鄭惟一)에게 보낸 답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행하는 바는 매번 남보다 한 걸음 물러서고, 남에게 조금 더 낮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후진이 선진의 문하에 오르면, 주인이야 비록 믿을 만하다 해도, 문하에 있는 빈객을 모두 믿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발 한 번 내딛고 입 한 번 여는 사이에도, 기림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헐뜯음을 얻고 만다. 헐뜯음을 얻는 것은 진실로 두려워할 만하고, 기림을 얻는 것은 더더욱 근심할 만하다. 옛사람이 후진을 경계한 말은 이렇다. '오늘 임금 앞에 한번 칭찬을 얻고, 내일 재상의 처소에서 기림을 한 차례 얻고서, 이로 인해 스스로를 잃은 자가 많다(所以行於世者, 則每以退人一步, 低人一頭, 爲第一義. 後進登先進之門, 主人雖是可信, 其在門賓客, 皆可信耶. 故於一投足一開口之間, 不得譽則必得毁, 得毁固可畏, 得譽更可憂. 古人戒後進之言曰: 今日人主前得一奬, 明日宰相處得一譽, 因而自失者多矣)."
스스로를 잃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임금과 재상의 칭찬을 한번 듣고 나면 그만 우쭐해서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교만하게 굴다가 남의 헐뜯음을 입어 원래보다 더 낮은 자리로 끌려 내려간다는 뜻이다. 남에게 비난받을 행동을 하는 것은 두렵고, 남이 나를 칭찬하는 것은 더더욱 겁난다. 비난은 고치면 칭찬으로 바뀌지만, 칭찬에 도취되면 더 올라갈 곳이 없다.
명나라 때 육수성(陸樹聲)이 '청서필담(淸暑筆談)'에서 말했다. "사대부가 나아가고 물러남에 우연히 득실이 합치됨은 모두 정해진 운수가 있어서다. 하지만 득실은 살아생전에 그치고, 시비는 죽은 뒤에 나온다. 대개 몸과 명예의 득실은 한때에 누리고 못 누리는 것과 관계된다. 하지만 공론(公論)의 옳고 그름은 천년의 역사 속에서 권면과 징계에 관계된다. 그래서 얻고 잃음은 한때이고, 영예와 욕됨은 천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士大夫出處遇合得失, 皆有定數. 然得失止于生前, 是非在身後. 盖身名之得失, 關一時之享否, 而公論之是非, 係千載勸懲. 故得失一時, 榮辱千載)." 한때 떵떵거리고 잘살아도 천년의 손가락질은 피할 길이 없으니 그것이 무섭다. 잠깐의 득의와 천년의 욕됨을 맞바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