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李穡·1328~1396)의 '진시무서(陳時務書)' 중 한 대목이다. '근래에 왜적 때문에 안팎이 소란스러워 거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안함에 처하여서도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면(居安思危) 가득 차더라도 넘치지 않을 것입니다.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막는다면(思患豫防) 어찌 엉킨 문제를 도모하기 어렵겠습니까? 늘상 하던 대로 하다가 하루아침에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장차 무엇으로 이를 대비하겠습니까?'
이정암(李廷馣·1541~1600)의 '왜변록(倭變錄)'에 실린 서해도 관찰사 조운흘(趙云仡·1332~1404)이 임금에게 올린 글의 첫 대목이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집안이 넉넉하고 인구가 많으며 안팎으로 근심이 없을 때에도 오히려 거안사위하면서 두루두루 꼼꼼히 예비합니다. 하물며 우리나라는 물길로는 왜의 섬과 가깝고 육지는 오랑캐 땅에 이어져서 진실로 근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희(朱熹)가 송 효종(孝宗)에게 올린 봉사(封事)에서 말했다. '천하의 일은 어렵거나 일이 많은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편안한 것이 짐독(酖毒)이 됨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설령 정치가 잘 행해져서 해야 할 일이 한 가지도 없다 하더라도 아침저녁으로 두려워하고 거안사위하면서 조금이라도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하물며 지금 천하는 비록 당장 눈앞의 급한 일은 없는 것 같지만, 백성은 가난하고 재물은 궁핍하며, 병사들은 게으르고 장수들은 교만합니다. 바깥에는 강포(强暴)한 오랑캐가 있고 안으로는 원망하는 군인과 백성이 있습니다.'
거안사위는 '좌씨전'에 나온다. 진(晉)나라 도공(悼公)이 정(鄭 )나라가 보내온 항복 예물의 절반을 싸움에 큰 공을 세운 위강(魏絳)에게 주었다. 위강이 사양하며 말했다. "편안하게 지낼 적에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습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잘나갈 때 돌아보고, 일 없을 때 더 살펴야 하는데, 우리는 어쩌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