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30] 타락수구 (打落水狗)

bindol 2020. 8. 5. 06:27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루쉰의 산문집 '투창과 비수'에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이 있다.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권세를 믿고 날뛰며 횡포를 부리던 악인이 있다. 그런 그가 실족하게 되면 갑자기 대중을 향해 동정을 구걸한다. 상처를 입은 절름발이 시늉을 하며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유발한다. 그러면 그에게 직접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마저도 그를 불쌍히 보며, 정의가 이미 승리했으니 그를 용서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슬그머니 본성을 드러내 온갖 못된 짓을 되풀이한다. 원인은 어디에 있나? 물에 빠진 개를 때려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판 셈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해서는 안 된다. 악인에 대한 징치를 분명하게 해두지 않고, 어설프게 용서하고 화해하는 페어플레이는 더 큰 해악을 불러올 뿐이다.

1937년 10월 19일 옌안에서 열린 루쉰 서거 1주년 기념 대회에서 마오쩌둥은 '루쉰을 논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마오는 루쉰의 위 글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패야 한다(打落水狗)'고 주장했다. 물에 빠진 개를 패지 않아 그놈이 뛰쳐나오면 당신을 물려 들 것이고, 최소한 당신에게 흙탕물을 튀길 것이다." 그는 운집한 대중에게 루쉰의 혁명 정신을 배워 발양할 것을 호소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는 현재 일본 제국주의라는 미친개를 아직도 물속에 빠뜨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놈이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중국 국경에서 퇴출될 때까지 계속해서 두들겨 패야 한다."

다산은 '일본론'에서 "일본의 풍속은 불교를 좋아하고 무력을 숭상해서 연해(沿海)의 여러 나라를 노략질하여 그 보화와 양식과 비단을 약탈해 눈앞의 욕심을 채웠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우환거리가 되어 신라 이래로 수십 년 사이라도 일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다산은 이토 진사이(伊藤仁齋)나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학자들의 문채가 찬란한 것을 보고 '지금의 일본은 걱정할 것이 없다'고 낙관했다. 무려 다섯 가지 근거를 대며 일본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제 와 다시 읽어 보니 다산의 낙관론은 너무 순진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7/31/20190731030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