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50] 습정양졸 (習靜養拙)

bindol 2020. 8. 6. 05:0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우왕좌왕 분주했고 일은 많았다.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손에 쥔 것은 별로 없다. 세밑 언덕에 서니 이게 뭔가 싶어 허망하다. 신흠(申欽·1566~1628)의 '우감(偶感)'시 첫 수는 이렇다. "고요 익혀 따지는 일 잊어버리고, 인연 따라 성령(性靈)을 길러보누나. 손님의 농담에 답할 맘 없어, 대낮에도 산집 빗장 닫아둔다네(習靜忘機事, 隨緣養性靈. 無心答賓戲, 白晝掩山扃)." 고요함에 익숙해지자 헤아려 살피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음 밭은 인연 따라 흘러가도록 놓아둔다. 작위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과 공연한 말이 싫다. 산자락 집 사립문은 대낮에도 굳게 잠겼다. 나는 나와 대면하는 게 더 기쁘다. 나는 더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겠다.

이수광(李睟光·1563~1628)도 '무제(無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온종일 말도 없이 좌망(坐忘)에 들었자니, 이렇게 지내는 일 홀로 즐김 넉넉하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익히니, 담백하게 어디서건 참 나가 드러나네(坐忘終日一言無, 這裏工程足自娛. 身在動時猶習靜, 澹然隨地見眞吾)." 좌망은 나를 잊은 경계다. 말을 잊고 욕심을 거두자, 부지런히 움직여도 마음이 고요하다. 담담하게 때 없이 참 나와 만난다. 이게 나고 이래야 나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서 말했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近日習靜養拙, 覺世間百千萬快樂如意事, 總不如自己上有安心下氣四字. 心苟安矣, 氣苟下矣, 方知眼前櫻觸, 無非吾分內事. 忿嫉愎戾之情, 漸漸消滅. 目爲之瞭, 眉爲之展, 脣爲之單辰, 血脈爲之和暢, 四肢爲之舒泰. 而凡有所謂不如意事, 皆怡然可樂)." 세 사람이 모두 습정(習靜)을 말했다. 마음을 더 차분히 내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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