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정민의 世說新語] [563] 일우보윤 (一雨普潤)

bindol 2020. 8. 6. 05:25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세상은 이처럼 어지러운데 어김없는 봄비에 대지가 깨어난다. 김육(金堉)의 '희우(喜雨)' 시다. "좋은 비 시절 알아, 내리자 잎에서 소리 들린다. 농부들 덕업을 이뤄보려고, 바람 속에 다급하게 몹시 바쁘네(好雨知時節, 初來葉上聞. 九農成德業, 風處急紛紛)." 두보의 시에서 한 구절씩 따와 엮은 연구시(聯句詩)다. 봄비 소리에 밖을 내다보니 들판에선 농부들의 농사 준비가 한창이다.

송상기(宋相琦·1657~1723)의 '희우' 시는 또 이렇다. "쟁기질에 비가 마침 부슬부슬 내리니, 단비에 조화의 기미를 알겠구나. 메마른 밭 윤기 돌아 채소가 자라나고, 가문 땅 기름져서 보리가 살지누나. 촌 노인네 쟁기 지고 다투어 활짝 웃고, 들 나그네 산을 보자 마음이 날아갈 듯. 옛 동산 생각자니 응당 더욱 좋겠지. 낚시터 앞 봄물이 바위 앞에 넘실대리(一犂時雨正霏霏, 甘澤方知造化機. 枯圃潤回蔬甲長, 旱田膏得麥人肥. 村翁負耜顔爭破, 野客看山意欲飛. 却憶故園應更好, 釣臺春水滿前磯)." 채마밭에선 채소가 싹을 틔우고, 먼지만 풀풀 일던 마른 밭도 촉촉이 젖어, 보리가 이들이들하다. 모처럼 생기가 돋고 살맛이 난다. 봄비에 씻긴 산은 말쑥해서 내 마음도 정결해진다.

한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중 '약초유품(藥草喩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산천과 계곡과 땅에서 나는 초목과 숲, 여러 가지 약초는 종류도 많아 이름과 모양이 저마다 다르다. 자옥한 구름이 쫙 깔려 삼천 대천세계를 뒤덮어 일시에 단비를 기다려 그 은택에 모두 젖는다. 똑같은 구름에서 내린 비지만, 그 종류와 성질에 따라 생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비록 한 땅에서 난 것이고, 같은 비에 젖었지만 여러 초목은 저마다 차별이 있게 마련이다(山川谿谷土地所生卉木 叢林及諸藥草, 種類若干, 名色各異. 密雲彌布, 遍覆三千大千世界, 一時等澍, 其澤普洽. 一雲所雨, 稱其種性而得生長, 華菓敷實. 雖一地所生, 一雨所潤, 而諸草木, 各有差別)."

비는 만물을 고르게 적신다(一雨普潤). 아무런 차별이 없다. 하지만 초목은 똑같은 비에 젖고도 생장의 결과는 달라진다. 놓인 상황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한 비에 젖고도 다른 결과를 낳는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9/20200319000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