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Indra)는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하는 힌두의 신이다. 그의 궁전 위에는 끝없이 펼쳐진 무한대의 그물 인드라망이 있다. 그물코마다 보석이 주렁주렁 달렸다. 보석은 각각 세공으로 잘 연마된 다면체로, 한 표면에는 무수한 다른 보석의 광채가 비쳐서 맞물린 형상이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끝없이 펼쳐진다. 화엄교학(華嚴敎學)에서는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를 비추듯 법계의 일체 현상도 서로 끝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 세계를 설명한다. 인드라의 그물, 즉 인드라망은 한자로는 인타라망(因陀羅網)으로 쓴다. 제석천의 그물이라 하여 제망(帝網)이라고도 한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환암을 그리며(有懷幻菴)'에서 "지혜의 허공 꽃은 앎에서 피어나고, 근진(根塵)의 세계는 깨달음에서 생겨나네. 겹겹의 제망은 참으로 한 몸이니, 명백한 선종(禪宗)에 맞겨룰 수 있으랴(智慧空華知上發, 根塵世界覺中生. 重重帝網眞同體, 的的禪宗可抗衡)"라고 노래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촌의 그물을 뒤흔들고 있다. 구슬 하나가 당겨지자 그물 전체가 춤을 춘다. 한 사건은 다른 파문을 낳아 끝 간 데 모르고 퍼져 나간다. 세상이 한 그물로 촘촘하게 얽혀 있음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요즘이다.
그런데 그 비추는 형상이 너무 참담하다. 학교가 문을 닫자 농부가 애써 기른 농작물을 갈아엎는다. 주문받은 물품을 천신만고 끝에 납기에 맞춰 선적하니 저쪽에서 못 받겠다고 한다. 세상이 도미노 쓰러지듯 연쇄적으로 와해되고 있다. 어디로 튈지 예측조차 안 된다. 하소연할 데조차 없어 억장이 무너진다.
참혹한 와해 한편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특수(特需)도 있다. 그렇게 독려해도 안 되던 대학의 인터넷 강의는 이번 일로 그 발전이 10년 이상 앞당겨질 모양이다. 지난날의 재앙이 오늘의 교사가 되고 잠시의 방심은 걷잡을 수 없는 후과(後果)를 부른다. 세상은 맞물려 있다. 독불장군은 없다. 예측과 예지의 힘이 경쟁력이다. 그래도 우리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상생과 조화의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