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年期 삶은 逆境의 克服과 忍耐心이다
인생이 어디 내 생각대로 흘러가던가? 요새 노인들이 만나면 “살맛이 안나? 자식들 눈치도 보이고 정말 사는 게 아니야?” 하며 한숨 짖는다. 죽지 못해 사는 전전긍긍 인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고통을 이기는 것이 노인의 삶이다. 노인으로서 평안한 삶이 주어지더라도 반드시 고통이 존재한다.
한평생 손을 내밀어 무엇인가 잡으려고 했지만 이제 남은 것도 없고 또 잡을 힘도 없어졌다. 젊어서 세상과 맞장 뜨던 동물성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늙어서 찾아오는 리스크(위험)는 신체적, 정서적, 경제사회적 위험일 것이다. 여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바로 변화하는 사회와 가족 관계에서 잘 적응하며 인내하는 삶이다.
초고속 사회에서 인내심은 고통이다. 빨리빨리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더욱 참지 못하는 편이다.
늙었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지 못하는 노인, 젊은이들의 철없는 행동에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는 노인 등 인내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예로부터 사람들이 노래한 ‘歲寒三友인 소나무, 대나무, 매화처럼 겨울을 이겨내는 인내심을 배워야 한다. 짜증나는 일들은 사실 사소한 것들이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인내력 시험의 생활이다. 화를내면 내 건강만 나빠진다. 노인으로서 꾸준히 참고 인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사실 늙으면서 세월의 나이는 아픔으로 느껴진다.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코너에 몰린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아픔에는 어디엔가 끝이 있으리라.
이기지 못할 고통을 하나님은 주지 않는 것이어서 우리는 씨름해서 얻어야 할 대상이 다름 아닌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치유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던가? 사실 고통의 지수, 역경지수를 이겨내야 한다. 진정한 희망이란 현실적인 고통을 잘 극복하는 일이다.
자신의 통증과 고통으로 인해 내 입에서 악!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역경지수를 낮추는 자세로 다음 몇 가지를 찾아 볼 수 있다.
1.첫째, 잘살기 위한 것보다 잘 견뎌내는 忍耐心이 필요하다. 노인으로서는 한없는 인내심은 자기조절 능력에 좌우된다. 특히 역경지수, 고통의 지수를 줄이는 일이다. 역경지수란 온갖 고통 스트레스에 생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 수준을 말한다.
2.둘째, 잘 늙어가려면 沈默할 수 있는 訓練이 필요하다. 삶과 죽음 앞에서 조용해지는 것이다. 노인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태도말이다. 늙어서는 하루하루가 수행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역경은 견딜 뿐만 아니라 역경을 사랑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노인들이 분노하고 좌절하기보다는 인내비용이 필요 한 것이다. 인내는 참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할 수 없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갖는 것이다. 고통을 참고 인내할 수 있을때 건강이 돌아온다. 때로는 사람들이 슬픔과 괴로움을 참으려고 하는데 울고 싶을 때 고인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건강에 좋다.
3.셋째, 悲劇的 狀況이 언제든지 올 수 있음을 準備하라.
70-80세 이상이 되었으면 시간은 덤이다. 매순간 의식적으로 죽음과 만나게 된다. 사랑하던 가족이 세상을 떠나거나 자신이 갑자기 쓰러질 수도 있다.
또한 우리의 삶은 육상경기의 허들 경기와 같아서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장애물을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고통을 넘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의 모습은 큰 감동을 준다.
비극적 상황을 극복할수 있는 능력은 감방이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8년간 수용되었던 미국인 제임스 스톡데일의 역경을 이긴 스토리는 유명하다.
사람이 역경에 처했을 때 ‘현재 상황’을 직시하며 정면으로 대응한 현실주의자들은 살아남았고, 조만간 일이 잘 풀일 것이라며 믿었던 낙관주의자들은 쉽게 무너져 죽더라는 것이다.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s's Paradox) 혹은 ‘희망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특히 극한 상황을 직시하고 고통을 먼 미래로, 내면의 심리상태로 조절하는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4.넷째, 마음의 유연성(柔軟性)을 가지되 집착(執着)을 버리자.
확실하게 살아가는 삶은 불가능하다. 완전한 것은 오히려 적(敵)이다. 늙어서 스스로 감옥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특정한 삶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다. 집착은 일종의 심리적 병이다.
지나친 사랑도 집착이다. 집착은 소유하려는 것으로 놓아주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집착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노인이 길이다.
과거의 울타리에 갇히는 삶이 아니라 현재형, 동사형으로 살아가는 일이다.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무거운 짐들을 벗어 놓고 수행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일이다.
하나의 교훈이지만 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오지 않는다. 남은 생애에 주어진 멍에를 끌고 가야한다. 그리고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을 들으며 우울한 마음도 챙겨보자.
우리 생명에는 하강국면과 상승국면이 있지 않은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지 않을까?
‘헨리 롱펠로우(Henry W, Longfellow 1802-1882)’의 시(詩) ‘잃은 것과 얻은 것’(Loss and Gain)을 읽어보면서 다시 한 번 내 생애를 성찰해 보자.
내가 비교해 보니, 이제껏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잡은 것 저울질 해보니, 자랑할게 없구나!
하도 많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좋은 의도는 화살처럼 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간때가 그 얼마였던가?
100세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노인들의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많다. 과연 이런 노인들을 누가 구(求)할 것인가?
현대의 노인들의 존재는 유익한 것, 해로운 것을 선택하거나 증명 할 수 없는 무기력 상태이다.
무료급식소에서 밥 한 숟갈 얻어먹는 가난한 노인들도 많다. 그러나 노인이 돼서는 이러지도 말고 저러지도 말고 일단 오늘을 살아서 잘 버텨보자. 그러면 한 주일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바꿔 투박한 막사발에 담긴 된장찌개를 먹는 것도 삶의 기쁨이요, 진솔한삶이 아닌가? 하느님께 노년기에 오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우 정 著>
posted by bin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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