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가면 한 번쯤 가게 되는 곳이 공자(孔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다. 그 곳엔 삼공(三孔)으로 잘 알려진 공묘(孔廟, 공자의 사당)와 공부(孔府, 공자의 거처), 공림(孔林, 공자의 묘지)이 있다. 그 중 공부의 삼당(三堂)이란 곳은 연성공(衍聖公)으로 봉해진 공자의 후손이 가족의 업무를 처리하던 방인데 그 한가운데 위에 ‘육대함이(六代含飴)’라 씌어진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무슨 뜻일까.
청(淸)나라 전성기를 일궈낸 건륭(乾隆)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소 공자를 몹시 존경했던 건륭은 재위(在位) 22년이던 1757년에 네 번째로 취푸를 찾았다. 당시 공자 집안의 가장 연장자는 공자의 67대손인 공육기(孔毓圻)의 부인 황(黃)씨로 81세였다. 그리고 바로 한 해 전에는 공자의 72대손인 공헌배(孔憲培)가 태어나 무려 6대가 한 집안에 살고 있었다(六代同堂). 자고로 가업(家業)이 번창하고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건 모든 중국인의 바람이다. 이 진귀한 광경이 곧 태평성세(太平盛世)의 한 표현이라 생각돼 흐뭇해진 건륭은 식사 후 공자 집안 전통의 후식인 엿(飴糖)을 먹으면서 ‘육대함이’ 네 글자를 써 황씨 부인에게 선사했다. 천하 제일의 가문인 공자 집안에서 여섯 세대가 함께 사이 좋게 모여 사는 게 마치 엿을 먹는 것처럼 달콤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4대가 한 시대를 함께 살기도 어려운데 6대가 한 집안에 사는 모습은 참으로 경사가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륭은 또 공자 집안과 사돈을 맺기 위해 대학사(大學士) 우민중(于敏中)의 딸을 자신의 수양딸로 삼아 공주를 만든 뒤 그를 공헌배에게 시집을 보내기도 했다. 원래 공헌배의 이름은 공헌윤(孔憲允)이었으나, 건륭제가 특별히 그를 배양(培養)해야 할 싹이라 지칭하며 배(培)자를 하사해 공헌배로 이름을 고치게 된 사연이 있기도 하다. 그런 중국도 이제는 삼대(三代)는 고사하고 이대(二代) 또한 같이 살기 힘든 핵가족 시대로 진입한 지 오래다. 우리 또한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세월의 변화를 탓하기보다는 세월에 맞춰 생각을 바꾸는 게 좋다. 삼대가 따로 살아도 마치 엿을 먹는 것처럼 달콤하게 산다면 그 또한 ‘삼대함이(三代含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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