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淸) 건륭제(乾隆帝)가 항저우(杭州) 시후(西湖)를 찾았다. 대학자 기효람(紀曉嵐)과 황제의 문서를 관리하는 어서방(御書房)이 따랐다. 호수 가운데 호심정(湖心亭)에 올라 달을 감상하던 건륭이 돌연 붓을 들어 ‘충이(?二 , ?은 ?(벌레 충)과 같은 자)’라 적고 뜻을 물었다. 기효람조차 답을 몰랐다. 신하의 무지에 건륭은 불쾌했다. 마침 지나던 과객이 “잘 쓴 풍월무변(風月無邊)이군”이라 말했다. 황제에게 불려간 나그네는 “바람(風)과 달(月)의 변(邊)을 없애면 충이(?二)가 아닙니까”라 답했다. 흡족한 건륭은 그를 어서방에 특채했다. 지금도 시후 호심정 앞에는 ‘충이’가 새겨진 길이 1m 너비 50㎝의 비석이 서 있다.
충이 고사(故事)는 당(唐) 이백(李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난(湖南) 둥팅후(洞庭湖) 호반의 악양루(岳陽樓)를 이백이 찾았다. 마침 누군가 벽에 일(一)?충(?)?이(二) 세 글자를 적어 놓았다. 주민들이 이백에게 뜻을 물었다. “신선이 남긴 대련(對聯)이오. 일은 수천일색(水天一色), 충과 이는 풍월무변(風月無邊)이오.” 탄복한 주민들이 붓과 먹을 내어 글을 청했다. 악양루 3층에는 지금도 마오쩌둥(毛澤東)이 특유의 필체로 쓴 두보(杜甫)의 시 ‘등악양루(登岳陽樓)’ 좌우에 이백이 ‘수천일색 풍월무변’이라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충이는 이후 가없이 아름다운 풍경과 동의어가 됐다. 언어유희이자 미어(謎語)다. “말이 있으면 천리를 가고, 물이 있으면 생선을 키울 수 있고,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나 나는 아니며, 흙이 있으면 곡물을 자라게 한다(由馬行千里 有水能養魚 有人不是?我 有土能種穀物).” 이 미어의 답은 어조사 야(也)다. 달릴 치(馳), 연못 지(池), 남 타(他), 땅 지(地)를 말한다.
이달 초 휴가를 맞아 악양루에 올랐다. 송(宋)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가 1층에 보였다.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뒤늦게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로 유명한 문장이다. 한국의 위정자도 과연 선우후락(先憂後樂)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신경진 중국연구소?국제부문 기자 xiaokang@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漢字, 세상을 말하다] ?二 <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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