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3일은 처서(處暑)다. 한 해 24절기 중 14번째에 해당한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 사이에 위치한다. 처(處)는 보통 ‘곳’을 나타내지만 여기서는 ‘멈추다(終止)’는 의미를 갖는다. 서(暑)가 ‘더위’라는 뜻이니 처서는 ‘더위가 멈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낮에는 아직 덥지만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때다.
처서는 흔히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말을 듣는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부터 밤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게 마치 가을을 재촉하는 노래와도 같다. 팍팍한 생활에 하늘 한 번 우러러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창을 열든 아니면 바깥으로 나가든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정말 뭉게구름이 피었는지 살펴봐야겠다. 물론 옛 어른들 말씀이 틀릴 리 없겠지만 말이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지고 여름 내내 극성을 부렸던 모기 또한 입이 비뚤어지며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하니 반갑기 그지 없다. 처서는 음력으로는 7월 중순 무렵인데 이 때는 농사철 중에선 비교적 한가한 시기라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이 나왔다. 처서에 내리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한다. 한데 이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쌀이 준다고 한다. 가을의 기운이 온 이 때 강한 햇살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돼야 벼가 성숙해지는데 만일 비라도 내리면 나락에 빗물이 들어가 벼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썩기 때문이란다. 농사일을 망치는 것이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중국에서는 처서 이 맘 때를 가리켜 ‘가을 호랑이’ 즉 늦더위라는 의미의 ‘추노호(秋老虎)’ 시기라 말한다. 중국 민간에서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입추 당일 비가 오면 선선한 가을로 무난히 접어들겠지만 비가 오지 않는다면 입추 후의 24일 간은 계속해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리라 본다. 그리고 그 24일을 24마리의 추노호라 부르는 것이다. 이 추노호 기간은 낮은 덥고 아침 저녁은 선선해 일교차가 크다. 한마디로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때이니 조심하라는 메시지가 추노호라는 말에 담겨 있기도 하다. 매사가 그렇다. 가을로 들어선다고 덤벙댈게 아니라 지난 여름 정리하며 조용히 가을 계획을 세울 때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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