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들지 않은 곳일지라도 푸르름은 때맞춰 저절로 오기 마련 이끼꽃 쌀알만큼 자그마해도 모란처럼 활짝 꽃 피우는 걸 배우네
시인에게 있어 이끼의 개화는 다가올 미래의 꿈이다. 그 러기에 이끼는 모란처럼 풍성한 개화를 바지런히 ‘배우고’ 있다. 하고많은 꽃 가운데 굳이 꽃 중의 제왕이라는 모란을 답습하겠다는 꿈이 그래서 더 야무지다.
눈길 주기가 쉽지 않은 이끼를 향한 자분자분한 목소리에서 무수한 흙수저들의 적막함을, 그러나 다가올 저들의 개화를 다독이는 시인의 웅숭깊은 마음을 읽는다.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더 무성해지는 이끼, 그 누구로부터 일말의 주목인들 받았으랴. 소외와 낙오의 상처를 다반사로 겪었을 테지만 묵묵히 혹은 악착같이 자기 역량으로만 푸름을 키운 끈질긴 생명력은 범접하기 어려운 경이라 할 만하다.
시인 김경성의 ‘이끼’에도 그런 경이가 엿보인다. 썩은 나무의 등걸을 지나 동굴 속까지/ 너른 바위 안쪽까지/ 철퍽철퍽 미끄러지는 물 잔등이어도/ 마른 입술 툭툭 터지도록 긴 가뭄이어도/ 몸 깊숙이 남겨놓은 자리가 있어/ 후드득 지나가는 빗방울 몇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그대 곁으로 달려간다,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