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두보의 情[이준식의 한시 한 수]〈49〉

bindol 2020. 9. 2. 06:52

又呈吳郞 / 杜甫(다시 오랑에게 드린다)

 

堂前撲棗任西隣 당전박조임서린
無食無兒一婦人 무식무아일부인
不爲困窮寧有此 불위곤궁녕유차
只緣恐懼轉須親 지연공구전수친
卽防遠客雖多事 즉방원객수다사
便揷疏籬却甚眞 사삽소리각심진
已訴徵求貧到骨 이소징구빈도골
正思戎馬淚盈巾 정사융마루영건

 

서쪽 이웃이 집 앞 대추 따 가도록 내버려둔 건
양식도 자식도 없는 아낙이라서였네
궁핍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랬을까
맘 졸일 걸 생각한다면 더 살갑게 대해줘야지
타지에서 온 그대를 경계하진 않겠지만
울타리까지 쳐둔 건 좀 심하지 않나
세금 바치느라 빈털터리 되었다고 하소연했으니
이 전란에 나조차 눈물이 쏟아진다네

 

 

집 뜨락에 대추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가을이면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후일 두보는 이 초가를 먼 친척조카 오랑(吳郞)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수십 리 떨어진 곳에 따로 초가를 하나 마련했다.

한번은 두보가 이 옛집에 들러보니 뜻밖에도 집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어 깜짝 놀랐다.
마침 오랑의 아내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기에
두보가 오랑에게 쪽지를 남겼는데 바로 이 시다.

이웃 아낙이 왜 창피를 무릅쓰고 남의 집 대추를 따러 오겠는가.
내 진작부터 그녀에게 얼마든지 따 가라 했네.
그녀가 낯선 그대에게 경계심을 갖는 건 공연한 걱정이라 쳐도
엉성하게나마 울타리를 쳐놓았으니 그녀가 오죽이나 맘 졸였을까.

이 전란의 시대에 고달픈 삶을 사는 이가 어찌 그녀 하나뿐이랴는 생각에
나도 마냥 눈물이 흐른다네.

행여 자신이 오랑의 야박함을 힐책한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조카뻘이지만
시인은 그 나름대로 공손하게 ‘드린다’고 표현했다.
아낙의 딱한 처지도 고려하면서 조카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으려는
시인의 조심스러운 배려가 엿보인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