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기다림[이준식의 한시 한 수]〈48〉

bindol 2020. 9. 2. 06:31

待酒不至 / 李白(기다리는 술은 오지 않고)

 

玉壺繫靑絲 옥호계청사
沽酒來何遲 고주래하지
山花向我笑 산화향아소
正好銜杯時 정호함배시
晩酌東窓下 만작동창하
流鶯復在玆 유앵복재자
春風與醉客 춘풍여취객
今日乃相宜 금일내상의

 

옥병에 검푸른 실 동여매고

술 사러 가더니 어찌 이리 더딘지
산꽃이 나를 향해 웃음 짓는

지금은 술 마시기 딱 좋은 시절
저녁 무렵 술 따르는 동창 아래

꾀꼬리 지저귀며 함께하누나
봄바람마저 취객과 어우러지니

오늘에야 제대로 쿵짝이 맞는구나

 

기다리는 자에게 술은 언제나 그 걸음이 더디기 마련이지만
이 시의 맛은 느긋한 기다림에 있다.
술심부름을 떠난 아이의 더딘 발걸음에 잠시 역정을
내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흐드러지게 핀 산꽃이 그새 시인을 향해 헤실대니 술 생각이
더 간절해진 시인의 공상은 끝 간 데 없이 흥겹기만 하다.
술 사러 간 아이는 저녁 무렵에나 당도할 모양이다.

아이라고 봄날의 풍광에 마냥 무심할 수 있었으랴.
저 역시 꽃과 새 소리와 봄바람에 한눈을 팔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어슬렁대고 있을 테다.
제 마음 내키는 대로 뒹군다 한들 무람없다 나무랄 일도,
조급해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저녁 술자리에는 흩어졌던 꾀꼬리들이 다시 창가로 모여들고
봄바람마저 한데 어울려 제대로 의기투합할 테니 말이다.
그러니 봄날의 이 기다림은 그저 맘 설레고 즐겁다.


“100년은 3만6000일, 하루에 300잔은 마셔야 하리”라고 했던 이백,
그에게는 시선이라는 별칭과 함께 주선(酒仙)이라는 애칭도 따라 붙는다.
한 호사가가 내놓은 흥미로운 통계 자료 하나. 1000여 수의 이백 시 가운데
주(酒) 자가 200여 차례 등장하고, ‘마시고 따르고 취한다’거나 술잔,
술독, 술병 등 술과 관련된 단어가 무려 700회가량 쓰였다고 한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