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허황된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53〉

bindol 2020. 9. 2. 09:46

於潛僧綠筠軒 / 蘇軾(어잠현 어느 승려의 대나무집)

 

可使食無肉 가사식무육
不可居無竹 불가거무죽
無肉令人瘦 무육영인수
無竹令人俗 무죽영인속
人瘦尙可肥 인수상가비
士俗不可醫 사속불가의
傍人笑此言 방인소차언
似高還似癡 사고환사치
若對此君仍大嚼 약대차군잉대작
世間那有揚州鶴 세간나유양주학

 

식사할 때 고기는 없을지언정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을 순 없지
고기 없으면 사람이 야위긴 해도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지지
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가 저속해지면 고칠 수가 없지
옆 사람이 이 말을 비웃으며 하는 말
고상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대나무도 마주하고 고기도 실컷 먹는 세상
어디에 그런 허황된 꿈이 있을쏜가

※세상에 '揚州의 鶴'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대나무는 사철 푸르고 곧게 자라기에 지조를,
속이 비어 있어 무욕과 겸손을, 쉬 꺾이지 않는 뚝심이 있어 기개를 상징한다.

예부터 선비들이 군자 대접을 한 이유다. 푸른 대나무집(綠筠軒)에 사는
한 스님에게서 그런 기품을 발견한 시인은 무척이나 반가웠을 것이다.

육신을 건사하기 위해 미식을 탐하지 않고 고결한 품격을 가꾼다는 게
어디 쉬운 노릇인가.

망가진 육신이야 회복될 수 있어도 정신이 천박해지면 구제불능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시인. 그래도 가끔은 시비를 거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고결한 품격이라니, 그 무슨 물정 모르는 발상인가.
기왕이면 물질적 풍요도 만끽하고 우아하게 여유도 즐기는 게 최상 아닌가.

시인의 반박은 단호하다.
대나무도 즐기면서 고기도 실컷 먹는다? 명예와 부,
미식과 수도(修道)를 두루 향유하겠다는 건
한낱 허황된 망상일 뿐이라네.


시 말미에 나오는 ‘양주학(揚州鶴)’의 유래.
네 사람이 소원을 하나씩 토로했다.
난 양주자사(당나라의 벼슬)가 되고 싶네.
난 많은 재물을 모으려네.
난 학을 타고 날아 신선이 되고 싶어.
마지막 한 사람이 말했다.
난 허리춤에 돈 십만 관 꿰차고
학을 타고 양주로 가고 싶네.

양주학은 허황된 꿈이나 분수 모르는 탐욕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