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어떤 상봉[이준식의 한시 한 수]〈65〉

bindol 2020. 9. 2. 16:14

上山采蘼蕪 / 漢代 民歌(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

 

上山采蘼蕪 下山逢故夫 상산채미무 하산봉고부
長跪問故夫 新人復何如 장궤문고부 신인부하여
新人雖言好 未若故人姝 신인수언호 미약고인주
顔色類相似 手爪不相如 안색류상사 수조불상여
新人從門入 故人從閤去 신인종문입 고인종합거
新人工織縑 故人工織素 신인공직겸 고인공직소
織縑日一匹 織素五丈餘 직겸일일필 직소오장여
將縑來比素 新人不如故 장겸비래소신인불여고

 

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 하산 길에 옛 남편을 만났네
무릎 꿇고 옛 남편에게 묻는 말 새 여자는 또 어때요
새 여자가 좋다고들 하는데 옛 사람만큼 예쁘진 않다오
얼굴은 비슷비슷해도 솜씨는 그렇지 못해요
새 여자가 대문으로 들어올 때 옛 사람은 쪽문으로 나갔지요
새 여자는 누런 비단을 잘 짜는데 옛 사람은 흰 비단을 잘 짰지요
누런 비단은 하루에 넉 장(丈)을 짜지만 흰 비단은 다섯 장 남짓을 짰지요
누런 비단을 흰 비단과 견줘보면 새 여자가 옛 사람만 못하다오

 

 

자신이 쪽문으로 쫓겨날 때 당당하게 대문으로 들어온 새 여자에 관해
여자는 옛 남편에게 조심스레 타진한다.


남자의 능청맞은 비교. 용모며 솜씨가 다 그대보다 훨씬 못하다오.
이래저래 더 빼어난 여자를 왜 쫓아냈을까.
남자가 미색을 탐한 것이 화근이었다면 여자가 옛 남편 앞에서 공손히
무릎 꿇었을 리는 없겠다.


허겁지겁 둘러댄 임기응변치고는 남자의 말본새 또한 사뭇 자분자분하다.
남자가 주동적으로 여자를 내쳤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평자들은 궁궁이(천궁)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서 그 실마리를 찾곤 한다.
남아 선호를 절대시한 봉건사회의 악습이 빚어낸 비극이라 본 것이다.

어지간한 깜냥이 아니고는 남편조차 가문과 사회 통념이 용인한
이 엄혹한 관습을 어쩌지 못했으리라.


새 여자가 좋다’고 하는 대신 ‘좋다고들 한다’는 맹한 듯 순진한
남자의 유체이탈 화법, 쪽문과 대문을 대비시켜 냉대를 비꼰 여자의 센스,
꾸역꾸역 해명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을 남자의 의뭉함 등에
민가 특유의 묘미가 엿보인다.


-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