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야?” 외근할 때 전화해서 다짜고짜 위치 묻는 상사가 있었다. 의문으로 가장했을 뿐 ‘노는 거 아니냐’는 의심, ‘빨리 사무실 들어와’라는 명령이 괄호 속에 있었다. 사무실이 바이러스 집결지라는 혐의를 받는 코로나 시대, 이런 풍경은 아득한 추억이 됐다.
집에서 아이를 보며 재택근무하는 여성./게티이미지 코리아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낮춰지면서 대부분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끝냈다. 본격적인 사무실 실험은 지금부터다. 그런데 ‘일의 베이스캠프는 사무실’이란 통념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 같다. 대기업 다니는 지인은 “재택 권장이 살아있지만 ‘오랜만에 다 모이니 좋네’라는 상사 앞에서 재택 얘기 꺼내기는 어렵다”고 했다. 여전히 자리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시간이 근태 평가 척도인 듯하다. 바이러스 때문에 비자발적이라곤 하지만, 한국 정서에 요원해 보였던 재택근무를 치렀다. 제자리로 돌아가선 곤란하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의 최근 보고서를 보면 해외 주요 기업에선 ‘코로나 이후 사무실 재해석’이 화두로 떠올랐다. 요지는 “사무실이 생산성, 기업 문화, 인재 획득에 결정적 요소라는 믿음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유연한 기업 문화의 상징 같았던 ‘열린 사무실’이 위기에 처했다. 일과 놀이의 경계를 없앤다며 사무실에 들였던 것들이 ‘안전’ ‘위생’의 적으로 퇴출 위기에 놓였다.
먼 얘기만도 아니다. 직원 편의 시설로 유명해 취재까지 갔던 한 외국계 IT 기업 한국 사무실은 편의점 매대를 방불케 했던 스낵 코너, 호텔 수준 카페테리아를 닫았다. 한국 기업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거의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갔지만, 이들은 오프라인 복귀를 늦추고 사무실 진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전 세계 사무실 디자인의 바이블이었던 ‘열린 사무실’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유산이다. 잡스는 1998년 ‘픽사’ 사옥을 지으면서 두 키워드를 제시했다. ‘우연한 마주침(encounters)’과 ‘즉흥적 협업(unplanned collaborations)’.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동료와 즉흥적으로 대화하는 사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취지였다. 물리적 장벽을 허물면 심리적 소통이 더 원활해진다는 주장은 당시로선 혁명적이었다. 보수적인 한국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 짓는 사무실엔 어김없이 카페형 오픈 공간이 들어갔다. 그런데 이 개념 자체가 코로나 기준으로 보면 금기다. 물리적 접촉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이젠 열린 사무실의 심리적 개방성을 유지한 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닫는가가 관건이다. 사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몇 해 전부터 사무실의 지나친 개방성이 부작용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세계적 사무실 디자인 회사 ‘겐슬러’의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65%가 사무실에서 반 개인 공간, 25%가 완벽한 개인 공간을 원한다고 했다. 겐슬러 임원은 한 인터뷰에서 “왼쪽 어깨 위 천사는 열린 공간이 소통을 높인다며 클라이언트를 설득하지만, 오른쪽 어깨 위 악마는 싼값에 빨리 공사를 할 수 있다고 유혹한다”고 털어놨다.
이제 사무실은 ‘놀이터 같은 공간’이 아니라 ‘안전하면서도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업무 효율은 사무실 인테리어에서 찾을 게 아니라, 업무 특성에 맞춰 재택 가능 인원과 현장 근무 인원을 분리하고 온·오프 연계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시스템 디자인에서 먼저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리적 사무실은 최소화하면서도 심리적 사무실을 최대화하는 비법을 찾지 않았을까. 잡스식 대전환이 사무실에 필요한 시점이다.